트럼프, '기저귀·카시트'에 무릎꿇나…"유아용품 관세 면제 고려"

2025-05-08

관세를 물린다고 아이를 안 낳나요? 카시트나 기저귀에 부과되는 관세는 미국의 중산층 엄마·아빠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 없습니다.

미국 워싱턴DC의 서민 주거지역에서 유아용품점을 운영하는 엘리자베스 밀러(가명)는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물품에 14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솔직히 우리 가게에서 파는 유아용품은 미국이든 유럽 브랜드이든 원산지는 모두 중국”이라며 “트럼프 말대로 인형 몇 개를 못 산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유아용 카시트가 없다면 아이들이 교통 사고에서 살아남을지 누가 장담하겠느냐”고 했다.

밀러의 말처럼 유아용품점을 가득 채운 카시트, 유모차, 보행기를 비롯해 젖병, 고무 젖꼭지, 유아용 장난감 등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초 밀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지만, 인터뷰 직전 “남편이 언론에 가게 이름이 나가면 괜한 불이익을 볼 수 있다고 반대했다”며 실명 인터뷰를 고사했다. 그는 연신 “미안하다”면서도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다던 트럼프를 믿었는데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했다.

유아용품에 대한 관세 저항이 거센 이유는 압도적인 중국 의존도 때문이다.

미 아동용품제조업협회(JPMA)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유아용품의 70%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특히 만 8세까지 의무로 돼 있는 카시트의 의존도는 98%에 달한다. 유모차는 97%, 유아용 침대 94%, 보행기 93% 등 육아 필수품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제품에 145%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소매 가격은 2배 이상 오르게 된다. 문제는 유아용품의 경우 생산공장을 미국 또는 중국이 아닌 제3국으로 이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알링턴에 위치한 유통업체 ‘타깃(Target)’에서 유아용품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조슈아 톰슨은 “아이들의 건강에 직결되는 유아용품은 제품 출시 전에 반드시 안전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현재 검사 시설 대부분은 중국 공장 인근에 있기 때문에 제조사들도 당장 공장을 중국 밖으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톰슨은 이어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중국이 미국에 유아용품 공급을 중단할 경우 미국의 모든 부모들은 기저귀나 젖병ㆍ젖꼭지도 구할 수도 없고, 카시트 미착용에 따른 범칙금을 매일 내야 할지도 모른다”며 “판매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오늘이 가장 저렴한 때이니 하루라도 빨리 사두라’는 것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매장에는 서둘러 유아용품을 구입하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군복을 입고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밝힌 터너 잭슨은 “태어나지도 않은 둘째의 유아용품을 사러 나왔는데 중고로 알아봐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며 “한 마디로 말하면 이건 ‘미친 정책’”이라고 말했다.

‘예비 아빠’ 마테오 가르시아는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기저귀를 대량 구매하면서 “가격이 더 오를까봐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사려고 나왔는데 이미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기자를 향해 “혹시 안 쓰는 유아용품이 있으면 내게 팔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유아용품은 오는 10일 스위스에서 시작되는 중국과의 공식 관세 협상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의외의 ‘복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하원 재무위원회에 출석해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중국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유아용품에 대한 관세 부과가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거란 강한 질타를 받았다.

베센트 장관은 여러차례 유아용품에 대한 관세 적용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지만 “세부 사항을 말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해롭다”며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질의가 계속되자 결국 “(유아용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검토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10일에 협상을 시작하고, 이는 (협상이) 진전됐다는 것과는 반대의 의미”라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자 상호관세 적용을 13시간만에 철회했고, 아이폰과 자동차 업체 등 자국 기업의 부담을 이유로 여러 차례 관세 적용의 예외를 추가하는 등 약점을 노출해왔다”며 “특히 서민들의 생계와 직결된 유아용품 문제는 중국과의 협상을 앞둔 시점에 협상력을 떨어뜨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중국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최근 미국 고위급에서 여러 채널을 통해 대화를 희망해왔다”며 “세계의 기대와 미 업계·소비자의 호소를 고려해 미국과 만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스위스에서 열릴 공식 관세 협상이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란 주장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퍼듀 주중대사 선서식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중국이 미국이 먼저 (협상을) 시작했다고 말했냐”고 반문한 뒤 “나는 그들이 돌아가서 자기들 파일을 다시 살펴봐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연간 1조 달러(약 1390조원)를 잃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있다”며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145%의 관세를 철회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아니다(No)”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에 “8일 오전 백악관에서 규모가 크고 높은 존경을 받는 국가의 대표들과 주요 무역합의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한다”고 밝힌 것과 관련 “영국과의 무역합의에 대해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다만 “이번 합의가 최종 확정된 것인지, 향후 몇 달간 지속될 합의의 기본 틀만 발표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선주 토마츠 코디네이터 thkang@joongang.co.kr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