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겠다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내 고장 시인이 있었다. 그는 시의 이슬에 튄 몇 방울의 피를 훈장 삼아 문학을 길러냈다. 스물몇 해였던가. 그 마음을 닮겠다고 다짐하였으나 내가 마주한 것은 언제나 늪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자기 위안’만 남는 한계였다.
이럴 때 환기(喚起)의 시간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른 시기에, 내 고장을 거쳐간 수인이 있었다. 전주교도소에 머물며 “녹두장군의 농민군이 전주성을 공략할 때 넘었다던 완산칠봉”을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던 실천가이자 사상가.
1968년, 스물네 살에 강단에 선 신영복 선생은 어떤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해 겨울, 선생은 ‘빙광’에서 희망을 찾았다. 빙광은 얼음에 비친 빛이 공중으로 반사되는 현상이다. 기온이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야만 자기 숨결로 만들어진, 벽에 달라붙은 성에에 비친 빛을 볼 수 있다. “빙광이 날카로워지면서 파릇한 빛마저 내뿜는 때를 가장 좋아한다”고 선생은 말했다. 선생은 혹한이 주는 고통조차 진실을 마주하는 창으로 여겼다. 날이 풀려 자기 입김이 만들어낸 성에가 “느릿느릿 벽을 타고 기어내리”는 것을 보면 공포스럽다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첫 장에서 고백한다. 염치없는 ‘자기 위안’이 만연한 시대에 물리적 한계를 넘어 실천적 의지가 만들어내는 용기와 통찰을 느낀다. 진실을 마주하는 자에게 따라다니는 한없이 깊은 사유를 본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사랑은 경작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선생은 인간에게서 희망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수감자라는 이유가 학문에 대한 열정을 식게 만들 수 없음을 발견한다. 감옥 안에서 서예와 독서를 이어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쇠창살 안에 갇힌 몸이지만 부모, 형제는 물론이고 형수나 계수, 조카와의 소통을 소홀하지 않은 것 또한 페이지 마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청구회 추억」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키워 간 선생의 한없는 인본주의의 극치를 엿본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대에도 오롯이 느껴질 키득거림과 들뜸, 애잔함이 뒤엉킨 장면에서 느껴지는 선생의 정신은 오히려 더욱 드높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쉬운 이치를 생활의 골목골목마다에서 확인하면서 여름 나무처럼 언제나 크는 사람을 배우려 합니다.”
슬픔 또한 선생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 주체로 남고자 했던 선생에게 어찌해도 지지 않는 의지를 배운다. 세속적⸳물리적 공간에 매인 선생의 환기는 빙광을 통한 무한한 우주로의 사유 확장이었다.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던 내 고장 시인과 달리, 선생은 숙고의 시간을 거쳐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새로이 쓰고자 했다. ‘자기 위안’ 대신 날마다 새로운 성좌를 키웠다.
어떤 이에게 희망은 오래된 고성에서나 피어나는 작은 풀, 납작 찌그러진 채 구르는 페트병 같다. 허리를 숙여야만 겨우 닿는다. 선생이 찾은 혹한의 빙광처럼 절박한 환기다. 그것은 냉철한 예지의 날을 세워 선생의 글을 마음에 새기는 용기다. 머리맡에 두고 날마다 실천적 의지를 다지는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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