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조선의 마지막 불꽃, 환구단의 황궁우

2025-03-11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전통 양식의 대문이 보인다. 대문 옆으로 지나가면 웨스틴 조선 서울 호텔이 나오고 외부 계단으로 올라가면 3층 팔각형 한식 건축물이 반겨준다. 이 건물은 황궁우(皇穹宇)라는 전각이다. 황궁우는 황천 상제, 곧 천신을 비롯해 땅·해·달·별 등을 관장하는 여러 신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건물이다. 호텔 뒤에 왜 이런 건물이 있는가?

황궁우는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환구단(圜丘壇)의 부속 건물이다. 천손사상을 지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명나라가 자국의 황제만이 천자로서 천제(天祭)를 올릴 수 있다고 외압을 넣기 시작했고, 조선 조정은 결국 1464년 제사를 마지막으로 이를 완전히 폐지하고 말았다.

천제가 다시 부활한 것은 대한제국에 이르러서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아관파천을 했던 고종은 1897년 2월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을 했다. 그해 10월엔 황제로 즉위하면서 근대적인 자주국가인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이에 완전한 자주국가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의식 중 하나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자 지금의 웨스틴 조선 서울 호텔 부지에 환구단을 조성했다.

황궁우는 환구단이 조성되고 2년이 지난 1899년 건립됐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에 입각해 팔각 형태에 겹처마, 모임지붕(용마루·내림마루가 없고 추녀마루가 하나의 꼭짓점에서 만나는 지붕)으로 만들어졌다. 황궁우는 밖에서 보면 3층 형태이지만 내부는 층 구분이 없는 통층 구조로 각 면에 3개씩 창을 냈다. 중앙 상부엔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칠한 원추형의 지붕이, 천장엔 일곱개의 발톱이 달린 칠조룡(七爪龍) 조각이 설치돼 있다.

고종이 꿈꾸던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국가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사라졌다.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환구단을 탐탁지 않게 여긴 일본은 1913년에 환구단을 허물어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철도국이 운영하는 4층짜리 호텔을 세웠다. 호텔 건물은 해방 이후 소유주가 여러번 바뀌며 증축·개축됐고, 오늘날에 이르는 동안 우리 기억 속에서도 환구단은 사라져버렸다. 대한민국은 놀라운 성장으로 경제대국, 문화강국이 됐다.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역량으로 우리가 잊고 있던 소중한 문화유산이 복원되기를 소망해본다.

이규혁 건축가·한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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