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딸만 셋인데 큰 아이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예요. 항상 이때 모여서 맛있는 저녁 먹고 선물 주고 촛불을 불며 즐겁게 보내던 추억이 있다보니 감정도 복받치고 생각도 더 많이 납니다.”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해주시지 않았다면 무안공항에서 그 나날들이 너무 차갑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너무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가 올해 6월에야 시작됐어요. 올해 성탄은 이렇게 보내지만 내년 성탄절이면 최종 결과 보고서가 나올 것 같네요. 아이의 환한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꿈 한번 꿨으면 좋겠습니다.”
영상을 통해 흘러나오는 단단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대성당 안에 조용히 울렸다. 곳곳에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는 모습도 보였다. 일년 중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축제와 기쁨의 시간.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에 묻은 이들에겐 몸서리쳐질 만큼 시리고 쓰라린 나날들이다.
영하 10도의 매서운 추위가 닥친 지난 25일 성탄절 밤에 열린 ‘이웃과 함께 하는 성탄음악회’. 경기도 화성 남양성모성지의 아름다운 대성당 안은 씻어내지 못한 슬픔과 먹먹한 위로, 단단한 의지가 교차하고 있었다. 개신교와 천주교, 정교회가 손을 맞잡은 이 음악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되새기며 예술의 언어로 평화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자는 취지로 1999년부터 시작됐다. 매년 다양한 이웃들을 초청해 왔던 이 음악회에 올해는 세월호, 이태원,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함께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낮은 자 곁에 계셨어요. 어둠 속을 함께 걸을 땐 잊혀지지 않는 것이 위안입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또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교회나 성당에서 이뤄졌던 이 음악회는 처음으로 남양성모성지에서 열렸다. 비극적인 참사로 가족을 잃고 상처받은 이웃들을 위로하고 용기와 희망을 전하자는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 이름없이 순교한 이들의 피가 뿌려진 이곳은 허허벌판이던 곳에 나무를 심고 기도의 길을 닦고 성당을 쌓으며 만들어진 묵상과 위로의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입구에서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만나는 것은 두 개의 커다란 원통형 탑이 나란히 서 있는 성당 전면부다. 영혼의 건축가라 불리는 마리오 보타의 작품으로, 성당은 수십만장의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완성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 무지개처럼 펼쳐진 천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촘촘하게 마감된 나무살 사이로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내부에 은은하게 퍼졌다.
전면 제단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예수상은 익숙하게 보아 온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을 뜬 생동감 있는 예수의 모습은 성당 안에 앉은 1000여명의 사람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박해의 칼날에 믿음을 지켰던 순교자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 세워진 공간에서 인류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신 예수님의 따뜻한 손길이 전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음악회는 90분 가량 이어졌다. 마이크가 없어도 공간의 공명을 이용해 깊고 맑은 울림이 전달됐다. 소프라노 윤정빈의 ‘넬라 판타지아’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냈고 베이스 손혜수는 한국 가곡 ‘마중’으로 관객들을 다독였다.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핸드벨로 연주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이 페이버릿 싱’은 진지한 객석으로부터 따뜻한 웃음을 이끌어냈다. 소편성 오케스트라 디아트원이 마지막 곡으로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한마음으로 강약을 조절하며 손뼉으로 박자를 맞춰 곡을 완성했다.
성당 밖으로 나오자 사위는 짙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갔다. 삼삼오오 걸으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이들이 저만치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또렷하고 밝은 별빛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