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4년 예고제, 예측 가능성과 유연성 사이에서

2025-08-13

우리나라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대입 전형 정책을 수험생의 대학 입학 4년 전, 즉 중학교 3학년 시작 전까지 발표해야 한다. 이 법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입 전형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제공한다는 목적 아래 만들어졌다. 그러나 요즘 이 ‘대입 4년 예고제’가 잘못된 예측을 부추기고 급변하는 입시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2023년에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발표하며 현행 9등급 상대평가인 고교 내신 체계를 ‘5등급 상대평가’로 바꾸는 내용을 명시했다. 발표 직후 여러 입시 전문가는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내신 변별력이 사라져 학생부교과전형에서 동점자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출했다. 물론 5등급제에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입시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전 과목 1등급을 받아도 의대 진학이 어렵다’는 과장 섞인 전망까지 나오자 학부모와 대학의 불안감은 커졌다. 대학은 곧장 변별력 부족을 전제로 해 전형 요강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수능 최저 기준 상향이나 대학별 고사 강화 등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실제 분석 데이터를 보니 변별력 논란은 상당 부분 과장돼 있었다. 이달 초 부산교육청이 발표한 고교 1학년 1학기 분포 추정 자료에 따르면, 5등급제에서 내신 평균 1.00을 받은 학생은 전체 표본의 2.07%에 불과했다. 일부 대학 시뮬레이션 결과도 비슷했다. 전 과목 1등급 학생 수가 1만~1만5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론과 달리, 분석 예상치는 2000~3000명 수준이었다. 간격이 촘촘해졌을 뿐 내신의 변별력은 있었다. 이미 2028학년도 전형 설계를 마친 대학도 있는데 말이다.

이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 대입 4년 예고제는 장점이었던 예측 안정성마저 흩뜨렸다.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던 기준이 실제 적용 시점에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또 대입 4년 예고제는 교육·사회·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세부적으로 조정할 순 있겠지만 4년 전 예고한 교육 정책 큰 줄기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이 밖에도 교육 정책이 4년 주기로만 바뀌다 보니 문제 발견 후 즉시 개선이 어렵고, 한 기수에는 유리했던 제도가 다음 기수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문제도 있다. 정권 주기인 5년과도 불일치해 새 정부가 교육 정책을 바꾸고 싶어도 제약이 있으며, 역설적으로 충분한 변화 준비 기간이 사교육 과열을 부추기기도 한다.

결국 4년 예고제는 예측 가능성이라는 장점보다 교육 정책 유연성과 혁신성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더 커진 상황이 됐다. 이번 5등급제 변별력 논란처럼, 보편적 예상을 근거로 한 정책이 실제와 어긋날 때 제도가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 있다. 그리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떠넘겨진다.

대입 정책에서 안정성과 유연성 중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지 묻고 싶다. 대입 4년 예고제 틀을 유지하되 긴급 조정이 가능하도록 보완할 것인지, 아니면 예고 기간 자체를 재설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현실에 맞는 대입 제도’다. 형식적인 안정성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

대입 4년 예고제의 보완책으로 관련 법률에 ‘탄력 조정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빠르게 변하는 교육 환경에 시기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여유’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또 필요한 경우엔 교육 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절차가 이뤄지도록 의무화했으면 좋겠다. 제도 변경 시 학생들에게 충분한 완충 기간을 제공해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학 입시는 사회·경제적 변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4년 예고제는 마치 오래전에 찍은 지도를 들고 낯선 도시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 마침 여당 내에서 2028 대입안의 일정 부분에 대해 4년 예고제 해당 여부를 따져보자는 말도 나온다. 이즈음에 안정성과 유연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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