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마음을 응시하는 김창길의 포토 에세이 ‘당신이 뉴욕에 산다면 멋질 거예요’

2025-03-26

“당신이 뉴욕에 산다면 멋질 거예요!” 미국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인은 1956년 자신의 사진집 『뉴욕』에 그렇게 적었다. 하지만 사진집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 책의 표지에 실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고독한 풍경은 아니다. 시궁창에 처넣고 싶은 구깃구깃한 사진들이다. 그의 사진집을 본 뉴요커들은 “이건 뉴욕이 아냐, 쓰레기야”라고 이구동성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파리지앵은 그의 사진에 매료되었다. 도대체 사진이 뭐길래 사진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 극명하게 차이가 날까?

사진은 시간을 멈추게 하는 마법이 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 과거의 순간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 그 과거의 순간에는 삶의 풍경들이 오롯이 담겨 있어 우리는 지나간 추억과 만날 수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은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나가는 순간을 영구적으로 기록한다. 도로시아 랭은 “사진은 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사진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때로는 사진의 어떤 장면은 초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은 언어의 생략이며, 사회적인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압축”이라고 말했다. 사진에는 없는 게 많다. 목소리, 향기, 맛, 감촉, 움직임 등이 없다. 오직 한 줄기 빛뿐이다. 어떤 빛은 사진이 현상되는 것처럼 마음 깊숙한 어딘가에 강렬하게 들러붙으며 파장을 일으킨다.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은 늘 무언가 부족하다. 좋은 사진일수록, 즉 상상의 여지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이 큰 사진일수록 울림의 파장은 증폭된다. 그래서 사진은 사라지는 것들에 맞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진의 가장 큰 힘이다.

김창길의 『당신이 뉴욕에 산다면 멋질 거예요』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사진작가 18명에 대한 오마주다. 사진은 무엇을 말해주면서 말해주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는 것이 사진이다. 사진은 씨줄과 날줄처럼 과거와 현재를 엮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와 진실을 보이게 하고 말하게 하기 위해 사진과 말을 연결했다. 거기에 문학적 상상력을 활용해 사진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독자들은 사진작가 18명의 사진들을 통해 삶의 풍경을 관통하는, 기억과 마음을 응시하는 인문학적 에세이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제1장 ‘시간과 겨루기에서 슬프지 않은 것은 없다’에서는 가난과 분쟁의 뿌리와 지문을 찾는 박노해, 붉은 피가 흥건히 물들고 있는 분쟁의 땅 이스라엘에서 희망을 찾는 이정진, 목숨을 걸고 러시아의 만행을 기록한 예브게니 말로레카, 코로나19 시기 웃픈 일상에서 불안과 공포를 체험한 어윈 올라프, 지구 위의 유토피아인 후터라이트에서 다른 삶을 찾은 팀 스미스, 백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인디언들의 문화를 복원한 에드워드 커티스, 오롯이 가족사진을 찍은 1세대 작가주의 사진가 주명덕, 문인과 예술인의 얼굴을 찍기 위해 발품을 마다하지 않는 강운구, 아직도 털보 산장지기와 반달곰을 찾는 김근원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제2장 ‘기억은 비탈진 골목길에 닻을 내리고 있다’에서는 타이가를 누비며 솔로베츠키의 겨울을 사냥하는 펜티 사말라티,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베를린을 댄디하게 산책하는 울리히 뷔스트, 부산 사람들도 몰랐던 부산을 기록한 박종우, 도발적인 시선으로 ‘맨얼굴 뉴욕’을 포착한 윌리엄 클라인, 한국의 산업 풍경들을 수집한 조춘만, 사라진 집에 대한 어떤 기억들을 남긴 강홍구, 디지털 시대에 대형 필름 카메라로 하얀 땅과 검은 하늘을 기록한 김승구, 살과 피와 뼈가 없는 유령을 찾아 나선 김신욱, 사진의 경계를 지운 호모 포토쿠스 황규태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가난과 분쟁의 전쟁터에서 희망을 보다

박노해의 노동은 사랑이다. 그것도 ‘발바닥 사랑’이다. 발이 가는 곳에 머리와 가슴도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 발이 가는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손이 하는 일도 발의 흔적을 기록하는 일이다. 하나는 펜을 들고 수첩에 적는다면, 하나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박노해에게 수첩은 기억을 보조하는 외장 하드였다면, 카메라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소통의 수단이었다. 박노해의 낡고 작은 필름 카메라로는 감각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진가에게는 아주 적합한 기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박노해는 “그 사건이 발생한 삶의 뿌리로 스며들어” 가고자 했다.

박노해는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발바닥, 대지와 입맞춤하는 나의 발바닥, 나의 두 발에 찍힌 사랑의 입맞춤, 그 영혼의 낙인”이 사진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박노해는 참혹한 가난과 분쟁의 현장에서 감각적일 찰나의 장면을 쫓지 않는다. 박노해가 사진에 담고자 했던 것은 가난과 분쟁의 뿌리와 지문들이었다. 그러면서 연민의 눈이 아닌, 경외의 마음으로 다가가 온전한 그들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 박노해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전쟁이 일어난 곳을 찾아다닌다. 그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폭격 속에 살아남은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올리브나무는 잿빛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는 천 년을 산다는 올리브나무는 아낌없이 내어주고 바쳐왔다고 말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우크라이나 사진기자 예브게니 말로레카는 하루 전 우크라이나의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마리우폴이 수도 키이우보다 가혹한 폭격을 당할 것을 예상했다. 3월 9일 러시아는 산부인과 병원을 폭격했다. 예브게니 말로레카는 만삭의 임신부가 아수라장이 된 병원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을 찍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남긴 것은 러시아의 만행에 대한 시각적 증거만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두루뭉술한 진술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고통을 기록했다. 타자가 느끼는 연민의 감정보다는 전쟁 피해 당사자의 고통과 분노, 전쟁에서 이기리라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화가 장욱진부터 소설가 김승욱까지,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다

강운구는 찍히는 대상들이 이겨야 그 사람 모습이 그 사람답게 찍힐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화가 장욱진처럼 사진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카메라만 들면 몸이 굳어버리는 소설가 박태순 같은 예민한 사람들도 있었다. 강운구는 반세기 전부터 문인과 예술인의 얼굴들을 담아왔다. 유명하다는 사람들을 억지로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들은 어쩌다가 인연이 닿게 되면서 만났다. 그는 “사람을 제대로 찍으려면, 발품을 팔아 그 사람이 머무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빛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는 어둡던 시절, 창문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태양빛이 사선으로 명암을 만들어내는 서울의 어딘가에서 강운구와 김승옥이 마주하고 있다. 김승옥은 신문을 손에 들고 벽에 기대어 강운구를 바라본다. 이때 강운구는 꿈틀거리는 빛의 명멸을 김승옥의 얼굴에서 낚아챈다. 강운구는 말한다. “그 사람의 아우라는 그 사람이 오래 머물면서 이루어낸 고유의 환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법이다. 그만의 공간에서 쏟아지는 빛과 그늘이 사람들 얼굴 위에서 부단히 교차한다. 결정은 늘 찍히는 이들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 나는 말없이 그 사람들의 행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은 사람마다 달랐다.

가족은 한평생을 써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이야기의 원천이다. 주명덕은 “가족은 천상으로 오르는 계단이며, 가없는 하늘가, 고요하고 아득한 바닷가에서 함께 뛰노는 벌거숭이의 아이들이며, 사랑하는 나의 클레멘타인”이라고 말한다. 주명덕은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작가주의 사진가다. 그의 ‘한국의 가족’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 연작이다. 주명덕은 전국을 돌며 한국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한국의 가족, 논산〉은 카메라를 향해 엎드려 절하고 있는 개를 포함한다면 마흔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뉴욕의 시궁창에서 비밥을 연주하다

월리엄 클라인의 사진을 본 패션 잡지 『보그』의 편집자는 “초점은 멍하고, 구도는 기울어지고, 화면은 흔들리고, 프레임은 몸뚱이와 이목구비를 무참히 잘라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클라인은 “나는 자유롭다고 느꼈다. 사진은 내게 엄청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며, 틀에 박힌 스윙 재즈에 반기를 들며 비밥 재즈에 열광한 비트족처럼 즉흥성과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그는 “무례하고 거칠고 잉크가 번져 있는”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카메라는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고, 카메라는 ‘우발성’을 포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월리엄 클라인이 남겨놓은 패션 사진들은 각별하다. 노란 택시에서 내리는 모델 안토니오, 대형견을 끌고 택시를 잡는 돌로레스, 타임스스퀘어에 놓인 전신 거울을 통해 보이는 택시를 부르고 있는 산드라 등 그는 실내 스튜디오에서만 찍던 패션 사진의 무대를 거리로 확장했다. 건널목을 건너는 사이몬과 니나를 곁눈질하는 여인들을 포착한 장면은 디자이너의 화려한 의상들이 실제 삶과는 얼마나 괴리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며, 거리의 모든 것은 기껏해야 상류층의 들러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윈 올라프는 ‘만우절’ 사진 연작을 통해 웃픈 일상이 내뿜는 불안과 공포를 표현한다. 스스로 사진 모델이 된 그는 하얀 고깔모자와 백색 마스크를 쓴 광대로 분장했다. 그런데 광대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가 싶더니 무서운 뒷맛을 남겨놓는다. 밀랍 같은 하얀색 마스크는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광대의 하얀색 마스크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버릴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묻어 있다. 코로나19 시기, 올라프는 도시 봉쇄에 직면한 공포감을 표현하기 위해 광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광대의 쇼핑은 실패로 끝났다. 비닐장갑을 낀 그의 손에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의 손가방뿐이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은 소비주의 사회가 직면했던 단절과 감금의 사회적 현상과 연결된다.

후터라이트, 울산, 부산을 기록하다

팀 스미스는 후터라이트가 “서구 사회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동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서구’를 ‘자본주의’로 바꿔도 무방하다. 지구 위의 유토피아인 후터라이트는 자본과 권력에서 벗어난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후터라이트 공동체의 일원으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것이 그의 사진술이다. 팀 스미스가 기록한 후터라이트의 사진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거의 투명인간이 된 그가 포착한 자연스러운 모습들이다. 두 번째는 사진가의 존재를 알고 있으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장면들이다. 세 번째는 사진가의 존재를 확실히 의식하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사진들이다.

조춘만은 울산 중공업 산업단지의 풍경들을 찍는다. 쌀알 같은 불똥을 튀기며 쇳덩이를 이어 붙이던 그가 ‘내가 살던 곳과 내가 했던 일을 찍자!’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조선소 하청업체의 용접사였다. ‘인더스트리 코리아(Industry Korea)’는 2013년부터 시작된 조춘만의 사진 연작 제목이다. 그는 국내 유일의 산업 사진가이자, 중공업 분야의 산업 이미지를 찍은 세계에서 유일한 사진작가다. 조춘만은 한국 중공업의 거대한 풍경이 볼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피사체의 눈높이나 그보다 높은 곳으로 카메라를 짊어지고 오른다. 석유화학 공장의 풍경들이 그렇다. 수평과 수직으로 직조된 배관들, 원통과 공 모양의 저장탱크, 하늘 높이 치솟은 굴뚝들. 그는 기계를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한다. 조춘만의 사진은 ‘한국 산업의 자연사’라고 할 만하다.

박종우는 소년 시절의 부산을 담은 지도를 완성하기 위한 스틸 로드뷰를 세밀하게 찍어 나갔다. 급경사진 산비탈을 뜻하는 ‘까꼬막’에서 그리운 할머니를 만나고, 유난히도 높고 거대한 부산의 목욕탕 굴뚝을 만나고, 산비탈의 계단들과 지붕 위 물탱크를 만나는 등 그는 부둣가, 시장, 해운대 기찻길, 방파제, 골목길을 찾는다.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소주 한잔을 들이켜는 배불뚝이 아저씨, 수산물 시장에서 쟁반을 머리 위에 지고 식사를 배달하는 아주머니, 3,000원짜리 정구지전을 공중 부양시켜 뒤집는 묘기를 선보이는 아낙네 등을 그는 어떻게 만났을까? 그렇게 박종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스트가 되어 부산을 사진으로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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