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 그래도 출판사 한다고?

2025-12-18

사명을 찾아서

유리관 지음

배드베드북스 | 232쪽 | 1만6000원

출판사 사명(社名)에는 회사의 사명(使命)이 담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래저래 사명(社名)을 만든 뒤 그럴싸한 의미를 짜맞추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사명을 찾아서>는 이렇게 만든 가상의 출판사 이름 60개와 가상의 출판사가 하는 일을 담았다.

출판노동자인 저자가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무얼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회에서 책을 만드는 과정은 부산물일 뿐, 출판사는 그저 의미를 담은 사명 하나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출판사를 만드는 일은 일종의 ‘별명 만들기’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출판사 등록만 돼 있고 책을 내지 않는 수많은 출판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출판인들이라면 모두 자신의 출판사를 차리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이름만 있는 출판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굳이 또 하나의 출판사를 만드는 것은 허튼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 출판사를 차리고 싶다면, 사명만 존재하는 가상의 출판사를 만드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책의 시작점이다.

책에는 60개 가상의 출판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그린다. 사원이 일일 대표가 되어 어영부영 일하는 ‘우리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출판사, 출판하지 않기로 하는 것만이 일인 ‘무엇을 출판하지 않을 것인가’ 출판사, 출판사를 관둔 이들끼리 모여 팀장과 대표마저 외주인 ‘관둠’ 출판사 등 각 출판사 명에는 기발한 상상이 담겼다.

가공의 이야기지만, 자꾸만 현실 사회가 겹쳐 보인다. 에피소드들은 직장인이나 자영업자가 겪을 수 있는 비극을 수도 없이 엮어낸 일종의 저주 같기도 하다. 저자는 고차원적 해학과 풍자를 숨 쉴 틈 없이 이어간다. ‘이렇게 운영할 거면 출판사를 차리지 말아라’는, 업계에 몸담아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조소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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