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곤 한일연극교류협의회 회장 “외교 별개, 한·일 연극계 늘 교류… 日 작품 55편 번역 소개 큰 성과” [창간36-국교정상화 60년, 이 시대의 한·일 가교]

2025-02-02

양국 연극계 단체, 민간 가교 역할

격년으로 상대국 희곡집 번역 출판

정식 무대에 올려진 연극도 다수

정부 차원 문화예술 교류 지원을

“국제 연극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20여년 동안 한·일 양국 외교 관계나 국내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활발한 교류를 해왔습니다. 두 나라 연극인들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심재찬 연출가의 뒤를 이어 2023년 취임한 이성곤(53·사진) 한일연극교류협의회 회장(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은 2002년 닻을 올린 협의회의 성과를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는 2000년 일본에서 먼저 설립된 일한연극교류센터와 함께 양국 연극계가 이해의 폭을 넓히고 협력하도록 가교 역할을 해왔다. 양국 연극계 인사들이 만든 두 단체는 격년제로 상대국의 현대희곡집을 번역·출판하고 번갈아 낭독공연과 토론회, 연수회를 개최하는 등 한·일 간 문화 교류의 중요한 민간 창구로 자리 잡았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만 해도 지금까지 일본에서 연극사적으로 중요한 작가와 자기 세계를 구축한 중견 작가, 주목할 만한 여성·젊은 작가 등의 작품 55편을 우리말로 번역, 소개했다. 이 중 상당수는 각각 일본군 위안부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연극 ‘하얀 꽃을 숨기다’(극작 이시하라 넨)와 ‘1986년: 뫼비우스의 띠’(극작 다니 겐이치)처럼 낭독공연으로 국내 관객과 만났다.

이 회장이 번역한 작품으로 인기가 많았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와 같이 공연제작사 등에 의해 정식 무대에 올려진 연극도 적지 않다. 지난달 서울 성북구 한예종 연극원에서 만난 이 회장은 “협의회가 빠듯한 운영비로 일본 희곡을 번역해 출판하는 형편에 자체적인 무대화는 엄두를 못 냈다”며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우리가 번역한 일본 희곡을 한번 읽어달라’고 재능 기부를 부탁한 게 낭독공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선 생소하던 낭독공연을 우리가 꾸준히 하다 보니 국내 연극계에서도 낭독공연을 인식하고 활용했어요. 특히, 협의회가 정기적으로 일본 희곡 55편을 번역해 출판하면서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 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 희곡을 읽고 싶어도 (번역본이 없어) 읽기 어려웠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일한연극교류센터가 일본어로 번역해 현지에 선보인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일본 연극계와 관객 호평이 상당하다. 지난해 초 일본 무대에 오른 김민정 작가의 ‘미궁의 설계자’가 대표적이다. 현지 기획사가 올해 재연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작가뿐 아니라 배우와 평론가 등 연극계 교류 영역을 확장하고 싶어도 정부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여건”이라며 “안정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강은 문화체육부장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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