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이 땅의 ‘수남이’들을 살려내라

2025-09-04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용식(유인촌)의 아들 수남은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한농대)로 진학해 농사를 짓겠다 고집을 부린다. 모두 존경하는 과수원집 김 회장의 아들인 용식도 농사만은 안 된다며 극구 말린다. 결국 가족들은 수남의 결정을 존중하며 농업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훗날 수남은 한농대 학생회장 선거에도 나간다.

한농대에는 부모의 농사를 이을 승계농 지망생들이 많다. 학비를 전액 국비로 지원하는 대신 졸업 후 6년간 의무영농을 하도록 한다. 해외연수 기회가 주어지고 동문 네트워크가 강해 농업계에서 한농대 졸업장은 일종의 ‘프리패스’다. 2학년이 되면 근 1년간 장기 실습을 나가 실무를 배우는데 지난 10년간 실습장에서 학생 2명이 사망했다. 올해 5월 양돈 실습을 나갔던 19세 학생이 화재로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

농촌에서는 쉬쉬하는 죽음들이 있다. 사고로 얼버무려도 스스로 생을 놓았다는 것을 직감한다. 늙고 비어가는 농촌에 귀한 청년들이 들어와 존중받고 살아가길 바랐건만 먹고살기 막막해서, 때로는 농촌 공동체의 갑갑한 폐쇄성에 갇혀 삶을 접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농촌의 삶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농사 절대 짓지 마라’ ‘농촌에 절대 가지 마라’를 기성세대로서 외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지난 7월 32세 청년농민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스스로 생을 접었다. 부모·형제와 인삼, 콩, 밀 농사를 짓다 이상기후로 농사 망치고 가격 폭락이 겹친 데다 대출 상환 압박까지 다가오자 견뎌내질 못했다. 그는 수남이처럼 일찌감치 후계농이 되겠다는 뜻을 두고 농업 엘리트 양성소인 한농대를 졸업한 재목이었다. 천덕꾸러기 벼농사도 아닌, 특용 작물이자 고소득 작물 농사에 도전한 청년창업농(청창농)이었다.

그가 받은 정책대출자금은 3억원. 최소 4년 이상 길러야 하는 인삼 농사로 당장 소득을 얻을 수 없고, 농사도 되지 않았다. 인삼 농사가 가업이었으므로 기술 부족 문제가 아니었고, 기후 문제가 불가항력이었다. 그는 손실을 벌충하기 위해 다시 땅을 빌려 논콩과 밀 농사도 지었지만 이마저 풀리지 않았다. 이미 논을 팔아 대출금 일부를 갚았고, 더 내다 팔 것이 없어지자 그는 자신의 생명을 대신 내놓았다.

고인이 청창농으로 선발된 시기인 2018년은 정부가 청년들에게 정책자금을 빌려주며 집중 육성을 시작한 때다. 그즈음 대출을 받은 청년농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원금 상환 시기가 맞물린다. 그사이 코로나19가 휩쓸었고, 기후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게다가 가혹한 불경기까지 겹쳐 소비 부진의 유탄을 농업도 맞았다. 정부도 이를 알고 2023년 정책자금 상환 기간을 최대 20년으로 늘렸으나 2020년 청창농 선발자까지만 해당할 뿐, 구멍이 생겼다. 2018년 전후에 청년농민이 3억원을 대출받았다면 대략 연 3000만원씩 갚아야 한다. 농업 연소득이 1000만원이 안 되는 판국에 3년간 먹지도 쓰지도 않고 모아야 할 큰돈이다. 내다 팔 전답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땅은 진즉에 잡혀버렸다.

이들은 빚 탕감이 아닌 상환유예나 대환대출을 호소하고 있다. 하나 농식품부는 원칙과 예산의 문제를 들어 난색을 보이며 기재부에 말해보라는 뉘앙스다. 빚을 졌으면 갚는 것은 당연하지만 빚을 내준 쪽도 책임이 있다. 비어가는 농촌에 청년을 채우고 식량안보를 사수하라며 청년들에게 대출 승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청년농민들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이 땅의 ‘수남이’들은 다른 청창농들에게 적용된 상환연장을 해달라고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그러면 농사도 포기하지 않고 농촌에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새끼손가락 걸었다. 다 제쳐두더라도 일단 젊은 생명들은 살리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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