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씨네 토종콩식품 대표 함정희 박사 별세
한평생 우리콩 전도사·GMO식품 위험성 알려
한국노벨재단, 노벨생리학상 후보 추천되기도
유족, 고인 뜻에 따라 장례절차 없이 장기기증

“대지는 날 보고 토종콩 살리라 하네”
함정희(72) 함씨네 토종콩식품 대표가 지은 ‘하늘 뜻’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지역사회에서는 함씨를 ‘토종콩 독립투사’로 불렀다. 그는 수입산 콩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토종콩의 우수함을 알리고, 토종콩을 이용한 식품을 연구했다.
함씨가 토종콩에 빠진 것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입콩으로 두부 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대기업 납품 등으로 월 매출만 5억원 이상을 올렸다.
우연히 듣게 된 강의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함 대표는 2000년 전주시청에서 진행됐던 안학수 고려대 박사의 특강을 듣게 됐다. 유전자조작(GMO) 콩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고, 당장 수입 콩 두부 공장을 접었다.
이후 함 대표는 토종콩만으로 두부와 된장, 청국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토종콩 중에서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쥐눈이콩에 몰두했다. 쥐눈이콩은 해독력과 약성이 뛰어나 일명 약콩이라고 불린다. 그는 수년간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쥐눈이콩과 마늘을 혼합한 청국장 개발에 성공하고 특허를 등록했다.
함 대표는 학구열도 높았다. 원광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지난 2021년 ‘한국인의 건강 관점에서 콩의 영양, 기원 및 유전자원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아 69세의 나이로 명실상부한 콩 박사가 됐다.
또 함 대표는 그동안의 토종콩 식품 연구개발에 대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을 비롯해 대통령·장관 표장과 신지식농업인장 등을 다수 수상했다. 지난 2019년에는 한국노벨재단으로부터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지난 2023년 전주 한옥마을에 개업한 식당이 폐업하면서 생산 공장까지 경매로 넘어가는 등 함씨네 토종콩식품은 경영난을 겪었다. 쥐눈이콩은 수입콩보다 10배가량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함 대표는 수입콩을 절대 사용하지 않고 토종 쥐눈이콩만을 사용했고, 경영적 난관에 부딪혔다. 이후 함씨네 토종콩 살리기 운동본부 등 여러 시민들은 힘을 모았고, 생산 공장을 이사한 뒤, 정상적인 운영을 되찾았다.
이러한 함 대표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함 대표는 지난달 14일 완주군 지방자치인재개발원에서 사무관 100여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한 뒤, 쓰러졌다. 전북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급성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유족들은 지난달 20일 함 대표의 생전 뜻에 따라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함 대표는 전북대병원에 각막과 신장 그리고 간을 기증했다. 또 광주로 이동해 뼈와 연골조직 피부를 기증해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빈소나 장례절차 없이 전주승화원으로 돌아와 하늘나라로 떠났다.
김종선 함씨네살리기운동본부 상임대표는 “갑작스러운 함 대표의 죽음에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며 “고인은 평생을 토종콩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모범적인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