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년 전, ㈜모나미 창업자인 송삼석(1928∼2022) 회장을 인터뷰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항소(恒笑)에서다. 항소는 ‘항상 웃는다’는 뜻으로 그의 호(號)를 따서 만든 고급 필기구 수입·유통 회사였다. 당시 85세의 송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경기도 용인에 있는 모나미 공장과 이곳을 오가며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호처럼 웃음을 띠었다. 그러나 그가 한국 문구의 전설인 ㈜모나미를 일구기까지 웃음보다는 역경의 연속이었다.
군산에서 태어나 완주 삼례에서 자란 그는 전주북중과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6·25 때는 의용군으로 붙잡혔다 탈출하는 등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부산 피난시절 무역회사인 삼흥사를 거쳐 1955년 광신화학에 지분 10%를 받고 상무로 스카우트됐다. 송 회장이 볼펜을 처음 접한 것은 1962년 서울에서 5·16 군사쿠데타 1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박람회에서였다.
이때 광신화학의 문구류 수입처인 일본의 우치다요코(內田洋行)회사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쓰는 걸 봤다. 그게 볼펜이었다. 당시 우리는 펜에 잉크를 찍어 쓰거나 만년필을 사용했다. 신기했다. 바로 ‘저걸 우리가 생산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계산기 10대(1대당 2000달러)를 사주는 등 호의를 베풀고 설득했다. 이 직원은 본사에 보고했고 일본 볼펜 시장의 90%를 차지하던 오토볼펜과 닿았다. 즉시 일본으로 날아가 볼펜 팁과 볼을 수입해 쓰기로 하고 잉크 제조기술을 전수받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1963년 판매를 시작한 모나미153이다. 이 볼펜은 62년동안 36억 자루 넘게 팔렸다. 한 줄로 세우면 지구 13바퀴를 돌고도 남는다. 하지만 초창기는 판매가 부진해 사무실을 돌며 볼펜 나눠주기 판촉을 벌였다. 또 간혹 성분배합이 잘못돼 잉크가 새는 바람에 흰 와이셔츠를 못입게 돼 변상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다. 공장에 불이나 폐허가 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각종 볼펜과 사인펜 매직펜 플러스펜 샤프펜 등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모나미 제품이 지난 25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韓美) 정상회담에서 화제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명록에 서명한 이재명 대통령의 펜에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 펜을 들고 “어디서 받은 것인가” “정말 멋지다(nice pen!)”며 “(다시 한국으로) 가져갈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 펜을 선물했고 트럼프는 “영광으로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웃었다. 이 펜은 한국 장인이 두 달간 원목을 깎아 만든 것으로 모나미 자회사인 플라맥스 펜촉을 장착했다. 전북에 연고를 둔 기업이 한미 정상회담을 부드럽게 이끄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아 흐뭇하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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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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