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류(交流)란, 직관적인 한자어 풀이로는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른다’는 뜻이고, 해석적으로는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한다’는 의미이다.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지난 4년간 전주문화재단은 호주 멜버른 아트플레이(Artplay)와의 문화예술교육 국제 교류를 이어왔으며, 지난 3월 2일 그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쳤다. 교류의 뜻풀이처럼, 언어도, 계절도, 문화도 달랐던 두 도시의 사람들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은 어쩌면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거리감이었던 것 같다. 기관 간의 교류였지만 결국은 사람의 만남이었고, 서로는 굉장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일하는 과정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나 환경에서 오는 차이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함께 하다 보니 그저 나와 비슷한 워킹맘이기도 했고, 자기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예술가였으며, 아침잠이 많아 힘든 직장인이었다.
4년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전주의 한지를 주요 재료로 하는 비대면 예술놀이 콘텐츠를 개발하는 과정이었다.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두 도시는 ‘쌍둥이 도시’라는 세계관을 갖게 되었고, 화면을 통해 비추어지는 서로 모습을 한지 위에 본떠 ‘그림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작업을 위해 전주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지를 공수하여 우편으로 호주 예술인들에게 보냈는데, 실제로 예술인들의 워크숍과 연구 과정에서 그들은 전주 한지의 특별함과 우수성에 대해 매우 큰 호기심과 소장 욕구를 비추기도 했다. 질감, 냄새, 투명도, 무게, 소리 등 한지의 모든 것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도 더 이상 사소한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예술인들의 협업으로 공동 개발된 콘텐츠를 비대면의 방식으로 구현해 내는 과정에는 양국의 영상감독과 엔지니어가 큰 몫을 해주었다. 만남과 실험의 전 과정을 영상으로 아카이빙했으며, 8,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두 도시의 그림자와 아이들을 연결하기 위해 실시간 송출과 스크린 상영, 동시통역, 스태프들의 복잡한 일정표와 무선 교신이 필요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채로 서로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그리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쌍둥이 도시의 그림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 콘텐츠는, 전주와 멜버른의 어린이들을 1대1로, 혹은 그룹 대 그룹의 방식으로 연결했다. 실물 크기의 스크린에 비친 서로의 모습과 도시를 관찰하면서 옷차림, 언어, 피부색, 날씨를 통해 서로가 굉장히 멀리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좋아하는 동물, 싫어하는 음식 등을 이야기하며 친구가 되어갔다. 자율적이고 허용적인 환경에서 자란 멜버른의 아이들은 질문이 많고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부끄러움이 많고 표현하기를 머뭇거리는 전주의 아이들이 호주 아이들은 의아했다. 아마도 잘하고 싶어서이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또 표현할 수 있도록 예술교육 차원에서도 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안타까움도 있었다. 1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함께 한 아이들은 스크린 위로 손을 맞잡으며 헤어지기 아쉬워했다. 호주에서 온 그림자 친구를 바람에 날리며, 외롭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뭉클했다.
교류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이 교류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통해 더 다양한 교류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두 도시 간의 협업에서 끝나지 않고, 아시아 TOPA(Asia-Pacific Triennial of Performing Arts)에 공식 참가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성과가 있었다. 아시아 TOPA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공연을 3년마다 선보이는 호주 최대 규모 행사로, 콘텐츠의 출품을 위해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해 왔고 그 프로젝트 비용 역시 한화로 약 1억 원에 달하는 호주 연방정부의 교류지원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영어권 국가로는 대한민국 전주가 최초로 지원을 받은 사례였고, 양국의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서로 오가며 본격적인 교류를 이어오는 데에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양국의 예술가들, 엔지니어들, 기획자들, 그리고 어린이들까지, 저 먼 나라 호주에 나의 동료가 있다는 것, 우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를 그리워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4년이었다. 그들은 꼭 한번 전주에 오겠다고 했다. 우리와 꼭 껴안고 방방 뛰면서 마음껏 반가워하고 함께 막걸리도 마시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서로의 바람처럼, 쌍둥이 도시의 성과들이 앞으로도 좋은 우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주희<전주문화재단 예술놀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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