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

2025-01-06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의 저서 “불구가 된 미국: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Crippled America: 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2015년)”에서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했다. 미국의 군사력을 크게 늘려 아무도 감히 덤비지 못하게 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그의 이러한 군사전략은 군함 건조 계획에 반영되어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 275척으로 줄었던 미국 해군 함정 숫자는 트럼프 1기에 296척으로 증가했다. 1기 트럼프 대통령은 군함을 최소 350척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에게 패배해 재선에 실패하면서 이 계획을 완수하지 못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2월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미국 방문했을 때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태평양을 미국과 중국이 반반 나누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2023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지구는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살기에 충분히 넓다”고 말했다. 중국이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취지다. 태평양에 국한하지 않고 중동과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까지 전 지구 차원에서 중국의 국익을 무시하지 말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중국은 미국이 군함 1척을 건조할 때 3척을 건조하는 빠른 속도로 해군력을 키우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30년까지 중국은 미국보다 131척 더 많은 군함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의 힘은 해군력에서 나온다. 1월20일 취임하는 트럼프는 미국의 힘을 투사할 수 있는 해군력 강화를 핵심 과제로 실행할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후인 지난해 11월 7일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세계적 건조 군함과 선박의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선박 수출 뿐 아니라 보수·수리·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다른 산업 부문을 제쳐놓고 조선업을 특정한 건 미국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미·중 간 대결의 무대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해군력에 미국이 밀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해 6월 공개한 ‘초국가적 위협 프로젝트’ 보고서에서 중국이 운영하는 전함이 234척으로 미 해군의 219척(군수·지원 함정은 제외한 숫자)보다 많다고 평가했다. 그리고는 “일본, 한국 같은 동맹이 중국의 수적 우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미 미 해군력이 수적으로 중국에 열세에 놓이면서 한·미가 해양·조선 분야에 협력 공간을 넓힐 명분은 마련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이 미국 군함 건조와 수리에 협력하는 것은 한미동맹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회로 평가된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 조선업은 CNN조차 세계 최고로 인정한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을 건조하며 그 역량을 입증했다. 미국의 요청에 부응해 군함 건조와 수리를 맡는다면, 한미 동맹은 최고 수준으로 격상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국의 혼란은 이 역사적 기회를 위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고, 탄핵당해 직무가 정지됐다. 대행 조차 탄핵당해 대행의 대행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과의 협력을 논의할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

정국 안정 없이는 한미동맹의 발전은 물론이고, 한국이 미국과의 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외교적 기회도 사라질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현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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