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가는 ‘자국의 안전 확보’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이중의 목표를 갖고 있다. 미국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이나 중국의 ‘핵심 이익(core interests)’ 강조도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안보와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협력 가능한 국제사회와의 연계를 총동원한다. 한국이 한미 동맹 공고화와 함께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국가와 달리 북핵 위기를 정면으로 감내하면서 한반도에 최대 영향을 미치는 미중 전략 갈등에 봉착한 한국의 입장은 더욱 곤혹스럽다. 더욱이 곧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2.0 시대와 군대까지 파병한 북러 밀착 심화에 대응할 틈도 없이 대통령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등 예측 불가능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까지 짓누르는 몸살을 앓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2기의 정책 전개에 따른 불확실성과 국제적 보호무역주의 추세 강화 및 공급망 불안은 전형적인 통상 국가인 한국의 경제 리스크를 촉발하는 핵심적인 우려 사항이다. 이미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이 위협받고 있어 1998년 금융위기의 재연에 근접해 있다. 가용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한중 경제협력의 방향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한중 관계는 기본적으로 북핵 요인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협력 필요성의 확대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5월 리창 중국 총리의 한일중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고위급 교류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지방정부 중심의 경제 교류는 확대 추세다.
그럼에도 한중 협력은 위기 요인이 더 많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동 정세 불안 및 아시아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에 따른 불안정성의 확대 추세는 한국에 더 심한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의 대외무역과 투자에서 1·2위 국가인 미중 간의 전략 갈등은 미국의 중국 압박 심화와 중국의 강경 대응 기조 속에서 다양한 변수를 양산할 것이다.
일단 미중 갈등 심화는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기술 분야의 공급망 분리 현상을 가속화해 한중 교역과 투자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도 불가피한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중국이 단순 생산기지나 수출 가공 기지가 아닌 세계 최대의 내수 시장이자 기술 강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위기와 기회는 공존한다. 중국은 ‘소비 촉진과 투자 수익 제고를 통한 내수 확대’를 올해의 경제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기술 자립’과 ‘쌍순환(dual circulation) 전략’을 기반으로 한 이 정책은 기존 한중 간의 제조업 분업과 상품 무역 범위를 초월한다. 미국 요인을 빼더라도 정치·경제적으로 양국 모두 이전의 중국이나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중 경협의 질적 도약에는 신성장동력 발굴과 미래 지향적 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디지털 경제, 탄소 중립, 신재생 에너지, 바이오 헬스, 문화 콘텐츠 등 신산업 분야에서의 협력은 물론 핵심 품목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선제적 공조도 요구된다. 창조적 파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연(地緣) 정치를 초월하는 창조적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