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대를 연 애플이 인공지능(AI)·가상현실(VR) 등 신기술 등장에 따른 수익성 악화 가능성을 인정했다. 스마트폰이 AI·VR 등에 대체당하는 한편, 지정학적 긴장이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을 위시한 규제 압박까지 거세지며 애플의 장기적인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5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이 AI와 VR 헤드셋 등 검증되지 않은 신시장에 진출하며 앞으로 출시될 제품이 아이폰 사업만큼 수익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투자자들에게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애플이 최신 증권 보고서 내 ‘위험요소’를 대거 추가했다는 것이다. 실제 애플은 이번 실적 발표 이후 “새 제품, 서비스 및 기술이 기존 제품을 대체해 매출과 이익 마진이 낮아질 수 있다”며 “이는 회사 사업과 재무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또 신제품 출시로 “더 높은 비용 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기존 문장에 ‘지정학적 긴장’이 줄 수 있는 잠재적 영향에 대한 경고를 더했다.
애플이 연초 VR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했고, 최근 아이폰을 비롯한 기기에 생성형 AI 기능 ‘애플 인텔리전스’를 선보였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의미심장한 결과다. 실제 비전 프로는 500만 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량을 보여 재고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기 구매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야하는 AI 기능도 장기적인 비용 부담을 높인다. 애플 인텔리전스 일부 기능은 애플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규제 리스크도 애플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이날 로이터는 EU가 애플에게 디지털시장법(DMA) 위반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DMA 위반시에는 최대 글로벌 매출 10%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반복 위반시 과징금 규모는 최대 20%까지 늘어난다.
EU는 올 6월 애플 앱스토어 운영 방침에 독점성이 강하다며 DMA 위반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애플이 항변했으나 EU는 기존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이르면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퇴임하는 이달 말 이전에 최종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EU는 아이폰 등 기기에서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앱 설치가 가능한 점과 최대 30%에 달하는 수수료 등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에 애플은 EU 내에서는 타 앱 장터 사용을 허가하는 등 대응에 나섰으나 여전히 수수료를 받으며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FT는 “애플은 앱스토어와 고마진 서비스 사업 부문에 대한 규제 압박에 직면해 있는데다 최근 미국 정부가 구글에 대한 검색 반독점 소송에서 승소하며 구글로부터 검색 기본 설정을 대가로 받는 수십억 달러의 수익이 사라질 위기”라며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도 1년 동안 애플 지분을 3분의 2가량 줄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