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차입 구조 이자비용만 매년 3000억, 법정관리 선택
미국 PEF LBO 실패사례 '토이저러스' 인수건과 판박이
구조조정, 비용통제 실패 스스로 자인...내부반발도 격화

[인사이트녹경 = 조영갑기자] "홈플러스 인수 이후 회생신청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이 건은 MBK파트너스(MBK)의 결정적인 판단 미스가 불러온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15년 홈플러스 본입찰 당시 사모펀드와 손을 잡았던 국내 인수금융사의 전 고위관계자는 "우리는 사실 내부적으로 우협(우선협상대상자)에서 떨어지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하면서 MBK의 승리를 '패착'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입찰에는 MBK를 비롯해 KKR-어피티니, 칼라일그룹 등이 치열하게 경합했지만, 결과적으로 7조2000억원을 써낸 MBK가 축배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우협 떨어졌던 게 바람직"
당시 홈플러스 대주주였던 영국 테스코(Tesco)가 본입찰 뒤 이른바 경매 호가 입찰(프로그레스딜)을 붙이면서 결과적으로 MBK와 KKR이 남게 됐고, 과열 양상을 띄면서 입찰가가 7조를 넘어서게 됐다. 테스코는 프로그레스딜의 최저 입찰가를 6조7000억원으로 제시해 경쟁을 부추겼다.
이 관계자는 "당시 이커머스 시장의 태동과 홈플러스의 브랜드 가치 등을 감안했을 때 7조 이상을 썼다가는 뒷감당이 힘들 거라는 내부적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점포수가 15개 이상 많았고, 업계 1위(매출액 기준)였던 이마트의 당시 시가총액이 약 6조5000억원 가량이었음을 감안하면, MBK는 너무 비싼 값을 지불한 셈이다.
MBK는 인수 비용 중 2조2000억원은 국민연금공단 등의 LP가 출자한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마련하고, 나머지 5조원은 홈플러스 명의의 차입금과 인수금융 대출로 충당했다.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사실상 차입금을 인수 회사에 전가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인수 이후 장단기 차입금에 대한 이자비용만 한 해 약 3000억원 가량 발생, 홈플러스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23년 말 기준 홈플러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1년 이하 단기차입금 규모는 1조767억원, 5년 초과 분은 3002억원 가량으로 총 1조3770억원 수준이었고, 2023년 말 지출한 이자비용은 2796억원 수준이다. 전년인 2022년 말은 2258억원을 지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부채는 총 2조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2023년 말 홈플러스의 매출액은 6조9314억원, 영업손실은 1994억원 수준이다.
내부 현금흐름이 악화된 상황에서 홈플러스는 지난달 28일 신용등급이 'A3-로 조정되면서 지급불능 등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서울회생법원에 4일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절차 개시 후 신용등급은 D로 강등됐다. 신용등급 D는 지급불능 상황을 의미한다. 단기기업어음 등을 발행해 운전자금을 조달하던 통로는 사실상 길이 막힌 상태다.
당장 홈플러스에 1조2000억원을 대출해 준 메리츠증권은 EOD(기한이익상실)을 거론하며, "대출 담보가치 평가액이 5조원 수준이기 때문에 1순위 수익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회생절차와 관련 없이 EOD 발생시 자산을 유동화해 채권을 회수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홈플러스 법정관리, 한국판 '토이저러스' 되나
시장에서는 무리한 LBO의 여파를 자구책으로 돌파하지 않고, 법원 회생절차로 떠넘겨 버린 홈플러스 대주주 MBK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사모펀드의 LBO가 사태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됐다는 점에서 미국의 '토이저러스' 파산 건과 정확히 겹친다는 지적이다.
토이저러스는 사모펀드의 LBO 실패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000년대 초반 등장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월마트와 함께 완구시장을 양분한 토이저러스는 2005년 매물로 나오면서 베인캐피탈-KKR 컨소시엄의 품에 안긴다. 당시 한화 7조원 가량에 인수됐다.
문제는 PEF 컨소시엄이 5조5000억원에 이르는 인수비용을 LBO로 충당, 상환부담을 오롯이 토이저러스에 전가했다는 점이다. 2010년대 들어 온라인 몰의 중흥, 신생아 급감 등과 맞물려 경영환경까지 악화됐다. 현금흐름이 둔화된 상황에서 연간 약 4500억원 가량의 이자비용을 떠안은 토이저러스는 결국 2017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채권자들에 의해 청산 수순을 밟았다. MBK의 홈플러스 인수 및 부채상환, 법정관리 신청까지 방식이 정확히 일치한다.
법원의 기업회생절차 인가로 채무유예 등 시간을 벌었지만, MBK가 궁극적으로 노리던 '바이아웃'의 통로는 더욱 위축됐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법정관리 신청으로 스스로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역의 알짜 점포 등을 매각(세일앤리스백)하면서 마케팅 네트워크를 위축시켰고, 부단한 인력 감축에도 불구하고 비용통제에 실패했음을 자인했다는 논지다. 홈플러스는 MBK 피인수 이후 대구점, 안산, 부산가야점 등 상위 매출지점을 포함 20여 개의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유동화했다. 이를 통해 약 4조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바이아웃 전문 MBK 자충수 뒀다
홈플러스 내부 관계자는 "경영이 악화됐다는 게 법정관리 신청의 직접적 원인이지만, 최근 농수산코너 오프라인 투자(메가푸드마켓)를 확대하면서 매출이 회복되는 추세였는데 일방적인 회생절차 신청은 당혹스럽다"면서 "결국 LBO에 따른 채무부담 전가가 이 사태를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MBK는 2015년 이후 약 4년 간 직영점에서만 약 5000여 명을 줄이는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도 병행해 왔고, 이 때문에 직군별 업무 분장이 사라지면서 업무 효율성도 떨어졌다는 전언이다. 인수 직후 보안협력요원 들 1000명 이상 감축하기도 했다. 노조 등에 따르면 총 2만 명의 임직원 중 약 10% 가량의 인력이 매년 정년퇴직 대상이라 추가 인력 구조조정의 여력도 없는 상황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법정관리 끝에 현대차에 매각한 기아차의 사례를 거론한다. 양상은 다소 다르지만, 사모펀드가 아닌 유관성 높은 법인이 홈플러스 체인을 인수해 정상화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모양새라는 이야기다. 현대차는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간 기아차의 부채(7조1700억원)를 탕감 받는 조건으로 기아차를 인수, 22개월 만에 법정관리에서 졸업시켰다.
국회 한 관계자는 "이번 케이스는 '기업가 없는 자본주의'의 전형으로, LBO 등 금융기법을 활용해 인수를 한 뒤 기업가치를 올린다는 명목으로 구조조정하고, 부동산 매각으로 유동자금을 만드는 방식을 추구했다"면서 "이익추구를 위해 기업 자체의 성장성을 갉아먹는 구도는 이제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기자 insigh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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