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2010년 3월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선 한명수 전 국무총리의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의 5만 달러 뇌물 수수사건 현장 검증이 열렸다. 이 사건 1심 재판장인 김형두(59·사법연수원 19기)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 부장판사는 건강이 악화돼 휠체어를 타고 현장에 참석한 곽 전 사장 대신 검찰 측 대역을 통해 세 차례나 상황 재연을 반복했다.
곽 전 사장이 당초 한 전 총리에게 직접 건넸다던 돈 봉투를 의자에 두고 나왔다며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면서 열린 현장 검증이어서 진술의 신빙성 여부 확인을 위해 초 단위로 검증한 것이다.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이 의자에 두고 나왔다는 2만 달러, 3만 달러가 각각 든 돈 봉투를 오찬장 한쪽 서랍장 서랍에 넣고 나올 경우 34초, 그냥 나갈 때는 21초가 걸렸다. 13초 차이를 두고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이 맞붙다 보니 당일 현장 검증만 세 시간 넘게 걸렸다.
현장에서 변호인 측은 “참석자 배웅을 위해 현관을 나가려면 남몰래 돈 봉투를 챙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고, 검찰은 “남모르게 돈을 챙길 여유는 충분했음이 재연을 통해 확인다”고 맞섰다. 양측은 곽 전 사장이 의자에 돈 봉투를 두고 가면서 한 전 총리가 이를 가져갔는지는 보지 못했다는 걸 두고 공방을 벌였다.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진행한 이날의 현장 검증과 5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 1심 재판은 법원에서는 ‘공판중심주의’를 확립한 교과서로 불린다. 검찰·변호인이 사전 동의한 증언·증거만 집중 심리해 첫 공판부터 불과 한 달여 만에 결론을 냈다.
김 재판관은 그해 4월 9일 “이 사건 유일한 직접 증거인 곽 전 사장의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한 전 총리가 오찬 직후에 5만 달러를 받아 숨기기는 쉽지 않아 보이며, 짧은 시간에 돈 봉투 처리가 가능한지도 의심이 든다”고 하면서다. 이 판결은 이후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김 재판관은 이후 진보 성향인 김명수 대법원장 아래 사법행정 실무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뒤 대법원장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재판관이 된 지 얼마 안 된 그를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고려했다.
이런 김형두 재판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수괴 혐의에 관한 탄핵심판에서 또 한번 교과서적 재판을 보여줄지 법조계에선 최대 관심사다. “가장 정치적인 사건을 법적으로 해결하겠다”던 한 전 총리 재판 때 그의 원칙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檢이 미워한 판사
김형두 재판관은 196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남중, 동암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과에 84학번으로 입학해 재학 중이던 8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9기 수료 후 당시 서울지방법원 관할이던 의정부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