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한 시기이지만, 아주 가끔 희망을 느낄 때가 있다. 미시적으로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다. 지난 14일 발표된 ‘부동산PF 제도개선 방안’도 그중 하나다. 부동산 개발금융제도가 왜 국가적으로 중요한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부동산 침체로 고생하는 이웃나라 중국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성장률 위해 부동산 이용했던 중국
눈덩이 부채, 미분양 주택으로 골치
한국, 자기자본 높인 PF개선안 발표
부실 투자 및 도덕적 해이 해소돼야
3년 전 중국 1위 부동산기업 헝다그룹의 파산설이 터진 이후 표면에 드러난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실물 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목표인 5% 달성이 미지수인 상태이다. 이번 달부터 한국을 포함한 9개국에 대해 한시적으로 단기비자를 면제한다는 중국 정부의 이례적 발표가 있었다. 우리도 최대 15일까지 무비자로 중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는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처음이다. 중국의 내수 침체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조치라는 분석이다.
지난 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는 지방정부의 부채 해결을 위해 5년간 총 10조 위안, 우리 돈으로 2000조원에 가까운 재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를 채권 형식으로 전환해 지방정부가 시간을 두고 상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경기부양 정책은 아니고,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화 지원책이다. 이번에 침체된 내수경기를 적극적으로 부양하는 정책이 포함될 것을 기대했던 시장 참여자들이 실망한 이유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정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채가 실제로는 1경 원이 넘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왜 부동산으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경제 성장 압박이다. 부동산 개발은 단기간에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이를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다. GDP 대비 부동산 연관 산업의 비중이 최대 30%에 달했던 중국은 활황기 동안 지방정부와 헝다 같은 기업이 수익성이 낮은 프로젝트에까지 대규모 부동산 투자를 진행하며 부채를 키웠다. 지방정부는 직접 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림자 금융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금을 조달했고, 이 숨겨진 부채가 현재 중국 경제의 뇌관이 된 것이다. 현재 중국의 미분양 주택 수는 약 9000만 채로 한국 인구의 두 배에 달한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이번에 발표된 개선 방안의 핵심은 부동산 개발 시 자기자본비율을 중장기적으로 20%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번 제도가 시행되면, 중국과 같은 부동산 과잉개발을 막을 수 있다. 시행사가 3억원의 자기자본으로 100억원의 개발사업이 가능한 것이 현재 제도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자기자본이 최소 30억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미국의 제47대 대통령 당선인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인 부동산 디벨로퍼이다. 투자에서는 자기자본비율이 낮을수록 도덕적 해이가 커진다. 사업이 실패했을 경우 잃는 돈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무리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번 발표에 대해 부동산 개발업계의 양극화가 생기고, 부동산 개발이 더뎌져 주거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첫째, 적은 자본으로 대규모 사업을 일으킬 수 있던 상황이야말로 규제 공백으로 인한 비정상이었다. 비정상적으로 떼돈을 벌 수 있었던 기회가 사라져서 아쉽다면, 업계에서 야기한 혼란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은 불투명해지고, 양극화는 심화하였으며, 청년세대들이 집을 살 기회는 더욱더 멀어지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둘째, 우리 부동산 시장의 문제는 수도권 주요 지역의 주택 부족이다. 전국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는다. 개발이 많이 된다고 주거안정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주요 지역의 신규택지 공급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서리풀 지구의 그린벨트 사업자 선정 시 높은 자기자본비율에 가산점을 주겠다고 해보면, 20% 충족이 진짜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책은 사회적 수용성이 올라간다면 우리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해본다. 부동산PF 부실 사업장에 나간 대출의 68%인 14조원은 상호금융권, 새마을금고, 저축은행에서 시행되었다. 특히 작년 일부 지점의 뱅크런 사태가 일어났던 새마을금고는 제대로 된 통계를 찾기 어려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그림자 금융이다.
마침 더불어민주당 이상식 의원,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이 새마을금고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도 꾸준히 새마을금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전문성 있는 의원들의 목소리와 개정안에도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책임감과 공공성을 갖고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박선영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