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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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를 찾은 30년 경력의 세무 공무원 A씨. 그는 자신이 NH투자증권을 사칭한 ‘고래협력프로젝트’ 사기 피해자(경기일보 17일자 7면)라고 밝히며, 고래협력프로젝트 일당 B씨와 나눈 대화록을 제공했다.
경기일보는 “추가 피해를 막고 싶다”는 A씨의 의중에 따라 대화록의 세부 내용을 공개한다.
시작은 달콤했다.
“회원님, 저는 C회장님(전 NH투자증권 대표 사칭)의 비서 B입니다. 저희 NH투자증권에 가입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매일 아침 코스피 종점 퀴즈 및 저녁수업 출석체크 시 커피 기프티콘 또는 상품권 증정합니다. 코스피 종점 퀴즈 누적 복수 당첨 시 거액의 캐시백 지급해 드립니다”(10월22일)
A씨가 B씨를 처음 만난 건 주식 공부를 위해 가입한 유명 투자가의 강의에서다.
온라인 채팅으로 대화를 걸어온 B씨의 소개로 네이버 밴드 ‘골든개미주주모임’에 가입한 A씨 . 그가 본 모임은 열성적인 운영진과 주식 공부에 열의를 가진 참가자가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참여를 독려하는 이벤트도 매일 쏟아졌다.
A씨에게 B씨는 어려운 주식 공부를 돕는 페이스 메이커이자 길잡이였다.
“우리 기관의 핵심 프로젝트인 고래협력프로젝트가 11월11일 시작됩니다. 프로젝트 설명회를 진행하겠습니다.”(11월4일)
고래협력프로젝트 안내 후에는 △△사이언스, △△기술 등 추천 종목이 날마다 공유됐다. A씨는 이 조언으로 기존에 참여하던 실제 주식시장에서 소액의 이익을 거뒀다. 성공 사례를 공유하는 대화방 내 참가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11월6일, 신뢰가 깊어진 A씨는 고래협력프로젝트에 1천만원을 투자했다.
“회원님, 가족과 친구에게도 프로젝트에 대한 기밀유지를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누설로 인해 모든 회원 및 우리 기관, 연합 세력이 큰 손실을 입게 되면 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직접 회원님의 참여 자격을 취소할 것입니다”(11월8일)
처음부터 이들은 ‘비밀 유지’를 강조했다. 정보를 누설할 경우 피해를 본다는 압박과 자격 취소를 언급하며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고립시켰다.
“C회장님이 직접 프로젝트 내용을 공유할 거예요.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5년간 가장 큰 투자 기회가 될 겁니다”(11월10일)
투자자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유명인까지 내세워 A씨의 투자를 종용했다. 고래협력프로젝트 일당에게 전 NH투자증권 대표 C씨는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심는 장치였다.
“리스크 관리부서로부터 심사가 통과됐습니다. 우선 NH증권 고래협력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로그인하십시오. 가입 시에는 신분증 앞뒷면을 찍어 실명인증하시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주세요”(11월11일)
통상적인 방법에 따라 A씨가 “기존 NH증권계좌는 필요 없나요?”라고 물었다. B씨가 “일반 증권 계좌는 고래 내부 운영 시스템으로 투자할 수 없습니다. 고래협력프로젝트는 고래 내부 운영 시스템이 제일 중요합니다”라고 답했다.
“회원님의 입금 되시면 오늘의 고래협력프로젝트 운영배분을 배정받을 수 있습니다”(11월11일)
‘입금’을 언급한 일당의 말에 A씨는 “죄송하지만 전 준비가 안돼서 프로젝트에서 빠지겠습니다. 실명인증된 신분증 폐기 바랍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회원님 고래 계좌는 계속 보유하셔도 됩니다. 준비 안 되셨어도 괜찮습니다. 일단 단톡방에서 계속 지켜보시고 공부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11월11일)
친절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일당은 끈질겼다. 오후 3시께 A씨의 이탈을 막기 위한 B씨의 첫 보이스콜이 걸려왔다.
“△△벤처투자 16% 수익률을 얻으신 회원님 축하드립니다”(11월13일)
고래협력프로젝트가 만든 가짜 투자앱(NH투자증권 사칭)에서 A씨의 투자금이 수익을 내는 듯 보였고, A씨는 성공한 투자자의 궤도에 오르는 듯 했다.
“고래협력프로젝트에 처음 참여하는 회원님들의 첫날 지분은 100%이기 때문에 오늘 고래 내부 운영 시스템에서는 회원님들에게 1천만원의 지분을 배분하고 실제 수익은 160만원이지만, 내일부터는 세력 내부 운영 시스템에서는 아래와 같은 비율로 회원님들에게 배분이 됩니다. 자금 분배 규칙에 따라 배당률은 다음과 같습니다”(11월13일)
“저희가 내일 20% 수익을 낸다고 가정했을 때 회원님의 내일 실제 수익은 500만원입니다 만약 회원님께서 내일 원금 4천만원을 추가로 투자하면 운영배분을 50%에 500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기존 자금보다 340만원 많은 수익입니다^^”(11월13일)
“이렇게 복리로 자금을 쌓는 것도 빠릅니다. 저희 고래협력프로젝트의 운영 기간이 한 달밖에 되지 않고, 이번 거래 전략은 향후 5년간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것이니 회원님께서는 기회를 잘 잡으시기 바랍니다” (11월13일)
‘잡아야 할 기회’를 언급하며 A씨를 회유했다. 연락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회원님 내일 100%로 예약 도와드릴까요? 고객센터로 연락하셔서 3억원 입금 예약하시면 됩니다. 고객센터에서 회원님 전용 계좌를 제공할 겁니다. 입금완료되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금일 100% 운영배분 배당해드리겠습니다~^^”(11월14일)
“오프라인 입금은 보안을 강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은행원이 계좌이체 용도를 물으면 ‘대출’ 또는 ‘사업자금융통’이라고 답하세요”(11월14일)
배당률을 빌미로 거액을 입금하도록 했다. 심지어 피해자가 실제 은행원에게 용도를 속이도록 지시하며 금융기관을 우회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회원님, △△DX 1만1천500주에 당첨되셨습니다. 예상 수익은 322.5%이며, 매도 후 계좌 잔액은 1억8천만원 이상입니다”(11월25일)
B씨는 322.5%라는 높은 예상 수익률을 말하며 당첨을 빌미로 납부해야 할 추가 금액을 제시했다.
A씨가 청약 비용을 납부하지 않자, “계좌 잔액이 0원으로 확인된다”며 압박도 가했다.
“회원님은 비용을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익절매도를 완료하지 않아 현재 계좌의 잔액은 0원입니다. 왜냐하면 회원님은 아직 할인주(△△DX) 비용을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1월26일)
A씨는 “죄송하지만 구할 방법이 없네요. 그냥 기존잔액만 배정부탁드려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일당은 포기하지 않았다.
“신용금 1천만원 대출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금요일까지 청약을 납부 완료하셔도 됩니다”(11월26일)
B씨 일당은 ‘고래협력프로젝트’ 이름으로 1천만원 대출까지 제안하며 A씨의 추가 자금 마련을 종용했다.
결국 A씨가 이익금 인출에 필요한 자금을 송금했지만, 출금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출금 비밀번호 설정’이나 ‘추가 개통 비용’ 등의 이유로 또다른 자금을 요구했다.
B씨는 A씨의 의문을 단순한 ‘절차 문제’로 치부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회원님이 지금 고객센터에 연락해 납부를 완료하고 익절매도 후 잔액을 알려주시면 오늘 운영 배분을 분배해 드리겠습니다. 더블 운영 개통하는 데 1천5백만원만 입금하시면 개통 가능합니다”(12월2일)
2차 운영 개통, 더블 운영 개통을 명목으로 1천5백만원이 추가로 요구되며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때까지도 NH투자증권을 사칭한 앱에서는 A씨의 투자금이 2억원까지 불어난 듯 보였다. 하지만 A씨는 이 돈을 한 푼도 인출할 수 없었다.
“관리비를 먼저 납부하신 후 출금 가능합니다. 관리비 미납 시 계좌가 동결될 수 있습니다” (12월2일)
A씨는 “수익금에서 공제하고 남은 돈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B씨는 “관리비 납부 없이는 출금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수상함을 느낀 A씨가 “관리비를 선납해도 출금을 막아놓으면 방법이 없지 않아요? 정산후에도 출금을 막아놓으면 저도 사법기관의 힘을 빌릴 수밖에요”라며 고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B씨는 태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방안에는 회원님만 참여하고 계시는것이 아니라 경찰 변호사 은행 직원 등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고 계세요. 다들 마찬가지에요. 결국 기관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데에는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죠 회원님들이 수익을 얻은후 10%의 관리비로 운영 비용을 받는건 아주 정상이죠 결국 윈윈하는것이 협력 관계에 있어서 가장 안정적이잖아요”(12월3일)
결국 ‘고래협력프로젝트’의 사기 행각을 깨달은 A씨는 지난 3일 경찰에 B씨 등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자 A씨는 “유명인을 언급하는 상대에게 속아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진리를 잠시 잊었다”며 “일반인들의 각별한 주의와 사칭을 당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조치, 투자 사기에 관한 법적 제도 마련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화록에서 드러난 반복된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에게 반복된 정신적 부담을 주며, 불안감을 조성해 결국 더 많은 돈을 지불하도록 유도한다”고 경고하며 “사기 피해를 예방하려면 불합리한 요구를 거부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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