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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 내연기관 차보다 나은 승차감
절묘한 서스펜션, 운전 재미도 챙겨
부드러움 살린 담백한 디자인까지
‘4000만원대’는 일종의 선물 아닐까
자동차 고르기는 쉽지 않다. 집 다음으로 비싸고 경우의 수도 너무 많다. 주변에선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다. 차 몇 대 좀 타봤다 싶은 사람들은 모조리 전문가 행세를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은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자동차나 옷이나 본질적으로는 쇼핑의 영역. 내가 좋고, 탔을 때 기분 좋고, 나한테 어울리고,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에 있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믿을 건 당신의 취향과 마음뿐이라는 뜻이다. 하물며 확실한 품질에 또렷한 디자인 미학까지 갖춘 스웨덴 출신 전기차를 볼보가 4000만원대에 내놨다면?
볼보자동차코리아가 최근 공개한 EX30의 가격은 트림에 따라 각각 4755만원(코어)과 5183만원(울트라)이다. 애초에 공개했던 가격보다 각각 190만원, 333만원 저렴해졌다. 말이 되나 싶은 결정. 앞서 공개했던 가격에서 추가로 가격을 또 내린 건 이 차를 기다려온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선물이었다. 보조금을 감안하면 둘 다 40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비슷한 사양의 EX30을 영국에서 사면 7505만원, 스웨덴에서는 7641만원을 내야 한다. 독일에서도 7108만원이다. 이 가격을 받아내기 위해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스웨덴 본사와 치열한 협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가격에 이렇게까지 공격적인 브랜드가 또 있었나?
볼보 EX30을 처음 만난 건 2024년 3월 스웨덴에서였다. 디자인 자체도 예뻤지만 일단 승차감이 예상외로 훌륭했다. 동급 내연기관 모델들의 승차감보다 나은 면이 있었다. 전기차의 승차감을 기분 좋게 매만지는 일은 쉽지 않다. 차체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무게의 비중이 상당해서다. 통상적으로 66㎾h 배터리의 무게는 400~500㎏으로 알려져 있다. 볼보 EX30도 66㎾h 배터리를 쓴다. EX30의 무게는 1810㎏이다. 전체 무게의 4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가 배터리 무게인 셈이다. 이 무게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전기차의 승차감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된다. 운전석은 그럭저럭 탈 만해도 2열은 감당 못할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볼보는 배터리 무게를 영리하게 배치했다. “EX30의 배터리는 차체 가운데에 낮게 깔려 있어요. 그래서 콤팩트한 차체의 무게중심을 낮추는 데 십분 활용할 수 있었죠. EX30을 운전할 때 재미를 느꼈다면 그런 설계가 이 차의 운전 감각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거예요.” 2024년 3월 스웨덴 룰레오 얼음호수에서 만난 볼보 엔지니어의 설명이었다. 무게중심이 낮으면 달리기에 유리하다. 고속으로 이동할 때나 코너에서도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된다.
서스펜션 세팅도 절묘했다. 서스펜션은 자동차 바퀴와 차체 사이를 연결하면서 노면의 각종 충격을 감당하는 부품이다.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과도기, 그 정도를 모르거나 성급했던 브랜드들은 단단하다 못해 딱딱하게 조인 서스펜션을 써서 실내 경험을 불쾌한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부드러운 세팅에 집착한 브랜드의 전기차들은 무슨 물침대 같았다. 양쪽 다 불쾌하기는 매한가지. 그 사이에서 주행 성능의 캐릭터를 구현하는 건 결국 철학과 실력일 것이다. 볼보는 지금까지 약 100년간 이어온 안전과 가족의 브랜드다. 그 단단한 철학을 이번에도 지켜냈다. 특유의 안락함은 물론 콤팩트 스포츠유틸리티차(SUV)가 응당 추구해야 하는 역동성도 구현해냈다. 이번에 출시한 볼보 EX30 싱글모터 익스텐디드 레인지 모델의 최고출력은 무려 272마력. 제로백은 5.3초다. 정지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5.3초 만에 시속 100㎞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시내에서나 고속도로에서도 속 시원하게, 스트레스가 풀릴 정도로 달릴 수 있는 힘이다. 후륜구동 특유의 재미도 담았다.
눈 쌓인 스웨덴의 소도시 룰레오에서 온종일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달릴 때나 서울 시내와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를 종횡무진 달릴 때도 다르지 않았다. 힘이 준수하고 실내가 안락하니 내내 산뜻했다. 이런 승차감의 첫 번째 장점은 운전 자체가 유쾌하고 재밌다는 것. 두 번째 장점은 그렇게 달려도 피로도가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운전해도 몸이 고되지 않다. 볼보가 만든 모델들은 두루 편안하지만 그 감각을 브랜드 최초의 콤팩트 SUV에서, 심지어 전기차에서 구현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다른 전기차는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이런 캐릭터와 완성도를 이 정도 크기와 가격에서 조화시킨 건 유일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감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달릴 것인가. 충전하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 것인가. 한국에서 인증한 EX30의 주행가능거리는 351㎞(저온 302㎞)다. 153㎾ 급속충전을 기준으로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8분이다. 환경부가 인증하는 주행가능거리는 늘 실제보다 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30도 그랬다. 한국에서 시승한 날짜는 1월 중순이었는데, 그 기후에서도 400㎞ 가까이 주행할 수 있었다. 운전습관에 따라 차이는 있을 것이다.
이제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할 차례. EX30의 디자인이 서울 같은 대도시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이 차의 완곡한 곡선 때문일 것이다.
EX30의 모서리에는 직선이 없다. 부드러운 곡률로 담백하게 다듬어져 있다. 0.28Cd에 달하는 항력계수를 위한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세련된 조형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시각적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항력계수는 차체에 대한 공기저항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낮을수록 효율적이다. 0.28Cd는 웬만한 세단이나 쿠페 수준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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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모서리 덕에 그렇지 않아도 콤팩트한 크기의 차체가 조약돌처럼 더 귀여워 보이지만 실내에 앉아보면 밖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공간감에 마음이 넉넉해진다. 12.3인치 태블릿 PC를 세로형으로 거치한 듯한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담백하기 이를 데 없는 인테리어 덕에 눈이 편안하다. 계기판도 없앴다. 필요한 정보는 중앙 디스플레이에서 기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고개를 들면 넓고 넓은 파노라마 같은 선루프가 천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어서 다시 한번 눈이 시원해진다. 뒷좌석에 앉으면 하늘이 가득. 앞좌석에서도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시선과 몸과 닿는 모든 자재는 꼼꼼하게 재활용 소재로 골랐다. 모조리 재생 가능하다. 북유럽의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받은 세 가지 인테리어 중 하나를 취향껏 고르면 함께하는 시간 내내 질리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묵묵하니 완성도 높은 디자인 언어로 구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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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 정도 사이즈의 SUV를 구매할 계획이 있었던 사람, 전기차도 괜찮을까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직접 한번 보기를 권하고 싶다. 코어와 울트라 중 어떤 트림을 사야 할지 고민이라면 기왕 사는 거 약 400만원을 더 투자해서 울트라를 선택하길 추천한다. 빠지면 섭섭한 편의장비를 알차게 갖춘 것은 물론 하만카돈 사운드바까지 적용돼 있다. 이 사운드바가 상상 이상의 소리를 낸다. 그 성숙하고 꽉 찬 음질로 듣는 음악이야말로 EX30과 함께하는 내내 확실한 즐거움. 스웨덴 출신의 정통 스칸디나비안 철학이 전기차라는 장르와 만나면 이렇게까지 산뜻해진다.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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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