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슈퍼레이스와 함께 분주한 일정을 치른 2025 래디컬 컵 코리아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영국의 ‘모터스포츠 경험’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을 손쉽게, 그리고 더 수준 높은 레이스의 경험을 보장하는 래디컬 컵 코리아는 올 시즌 다채로운 변화, 그리고 확장을 이어가며 국내 모터스포츠 팬들은 물론이고 ‘도전’을 희망하는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여기에 래디컬 등으로 대표되는 ‘프로토타입’ 레이스카의 특별함까지 알리고 있다.
그리고 래디컬 컵 코리아의 엔트리 클래스, ‘SR1 클래스’에서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을 비롯한 바퀴 달린 것들, 그리고 모터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저널리스트 ‘김태영(데이브 컨텍스트)’가 올 시즌 군더더기 없는 레이스, 그리고 더욱 개선된 경기력을 바탕으로 2년 연속 클래스 챔피언에 오르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래디컬 컵 코리아의 모든 일정이 끝난 지난 주말, ‘챔피언’ 김태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래디컬 컵 코리아 2025 시즌, SR1 챔피언에 올랐다. 소감이 궁금하다.
김태영(이하 김): 결과적으로는 아쉽다. 2024년에 이어서 2025년에도 목표로 했던 시즌 챔피언이 되었지만 레이싱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들이 지나가 버렸다는 점이 섭섭하다. 2024년, 래디컬 컵 코리아에서 처음 레이싱을 시작할 때는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우승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2025년이 시작될 때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레이싱에 참가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자금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2025년의 모든 레이싱 기회가 소중했다. 그 이후에도 ‘어떻게 하면 레이싱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짧은 시간 레이싱이라는 매력에 깊게 빠져든 것 같다.
어쨌든, 2025년에도 래디컬 컵 코리아의 모든 경기에 열심히 참가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SR1 클래스에서 결국 시즌 챔피언을 달성했다. 엔트리 넘버 11번이 ‘더블 원(두 번 시즌 챔피언)’을 목표로 한 것이었는데 이루게 되어서 기쁘다.

Q 올 시즌, 시즌을 치르며 가장 특별했던, 혹은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김: 개인적으로는 2025 전남 GT, 2시간 내구 레이스를 혼자 완주했을 때 같다. 2024년에 경기에서는 마지막 8분을 남기고 드라이브 트레인에 체인이 끊어져서 완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단단히 준비해서 2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종합 5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을 보면 주인공이 자동차 레이싱에 완전히 몰입해서 달리는 상태를 ‘나는 날아가(I’m flying)’라고 설명하는 대사가 있다. 실제로 그런 순간이 있다. 2시간을 몰입해서 계속 같은 코스를 달리다 보면 레이스카의 타이어나 엔진 컨디션에 변화가 생기며 매 랩마다 차 반응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게 느껴진다. 이럴 때 긴장하게 되고 코스 공략을 전체적으로 수정하면서 계속해서 전략을 바꾼다.

그러다가 경기가 1시간 30분 정도를 넘어가면서 긴장이 풀리고 머릿속에 모든 생각이 멈춘다. 그냥 무아지경으로 ‘날아가는’ 상태에 돌입한다. 코너 입구에서 기어 변속이나 제동은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정확하게 실행해 준다. 작은 미러로 보이는 뒤쪽 모습도 어느 순간 TV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인다.
속도감이 점점 줄어들어서 시속 160km로 고속 코너를 진입하면서도 트랙을 배경으로 멋지게 노을이지는 경치도 감상할 수 있는 상태다.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 올해 2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또 한 번 경험했다.

Q 래디컬 SR1이라는 ‘플랫폼’이 주는 특징, 강점은 무엇이 있을까?
김: 양산 스포츠카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하는 직관성과 순수함이 특징이자 강점이다.
많은 양산형 스포츠카들이 모터스포츠나 고카트 같은 이미지를 강조하지만, 자동차의 움직임이 절대적으로 순수하지는 않다. 급가속으로 엔진 출력을 사용할 때나 제동 할 때, 코너에서 차를 빠르게 회전시킬 때 운전자는 물리적인, 혹은 전자제어 기술에 도움을 받는다.
반면 SR1은 브레이크 잠김 방지(ABS), 트랙션 컨트롤(TCS) 같은 전자제어 어시스트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속, 감속, 코너링에서 운전자의 실력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드라이버 또한 주행 및 레이스 전반에 걸쳐 그 어떤 레이스카보다 ‘명확한 소통’이 가능하다.

이 부분에서 좋은 점이라면 일단 운전하면서 느끼는 재미가 최고다. 그 어떤 양산 스포츠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드라이빙 감각은 직관적이고, 섬세하다. 차를 믿고 달리는 게 아니라 내 운전 실력에서 오는 자신감을 믿고 달리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드라이버의 성장’이라는 부분에서도 확실한 이점이 있다. 실제 래디컬 컵 코리아에서는 드라이버의 모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습 경기부터 1:1 코칭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드라이버의 성장’ 을 목표로 하고 지원한다는 점이 래디컬 컵 코리아의 강점이다.

Q 저널리스트, 콘텐츠 제작자의 삶과 ‘레이스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김: 자동차 저널리스트를 하면서 중요한 것은 자동차라는 제품을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제품 안에 누군가의 철학과 과정, 목표가 담겨 있으니까. 제품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꼭 주행 성능의 한계까지 자동차를 운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성능 자동차가 주류가 된 요즘 시대에는 자동차에 담긴 목표화 철학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정확한 운전 실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과 넓어진 시각을 바탕으로 아주 미세한 특징을 발견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깊이 있는 콘텐츠의 방향도 이런 부분에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레이스를 시작한 후에는 일반 도로형 자동차를 보는 시각이 달리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절대적으로 높은 성능을 발휘한 차가 일반 도로에서든 혹은 서킷에서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트랙에서 좋은 기록을 내는 차와, 드라이버에게 좋은 기분을 주는 차는 다르다.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왜 극한의 테스트를 통해서 특정 수준에 성능이나 균형에 제품을 맞추는지 피부로 이해하고 있다.
일반적인 삶과 역동적인 레이스의 공존. 그 균형은 참으로 어렵다. 주말에는 자동차 레이서, 평일에는 자동차 콘텐츠 제작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처음에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오가는 것 같았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아드레날린이 가득한 기분으로 레이스를 하고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이 180도 달라져서 적막한 사무실에 앉아 차분하게 업무를 처리한다. 처음에는 이 두 세계를 단 몇 시간 만에 오가는 것에 괴리감이 있었다. 그래도 2년 정도를 하니 적응이 된 것 같다. 레이서들이 왜 감정적으로 점점 무덤덤해지는지 알 거 같다. 상대적으로 폭넓은 감정 기복, 그런 환경을 경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Q 저널리스트, 직접 참여하는 선수로 국내 모터스포츠의 활성화에 대한 제언이 궁금하다.
김: 자동차 저널리스트가 되고 모터스포츠 경기 취재를 시작한 것은 2005년이었다.
그 이후로 국내 모터스포츠를 다양한 분야로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좁은 시장에서 그들만의 리그’였다. 국내를 기반으로 한 많은 모터스포츠 전문가가 시장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로 관심을 가진 관객이 한정적인 입장에서 딱히 성장의 돌파구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2024년 레이스에 참가하면서 현장을 경험하니 분명 국내 모터스포츠 시장도 대중성 부분에서 꿈틀 거리는 것이 눈으로도 보인다. 관람객들의 범위나 연령층이 이전보다 훨씬 대중화되고 있다. 특히 영화 <포드 V 페라리> 이후로 국내 모터스포에 신규 팬층이 급격하게 유입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모터스포츠 관련 콘텐츠가 홍수처럼 늘어난다. 준비된 판에 시가가 맞아떨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5년 동안 국내 모터스포츠는 대중화의 물살을 탈 것이고 분명 크게 성장할 것이다. 나는 분명 아주 좋은 시기에 모터스포츠를 경험하고 있다.

Q 단순히 트랙을 달리는 것과 ‘레이스’를 참여하는 건 무슨 차이가 있을까?
김: “트랙 데이에서 장시간, 심도 있게 운전을 연습해서 개인 기량을 높인다면 레이스에 굳이 참가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이었다. 자동차 레이서가 되기 전에도 개인적으로 트랙 데이를 자주 다녔다. 레이스 트랙을 수십 바뀌 씩 돌면서 내 실력은 분명 조금씩 개선되었다.
하지만 레이스를 하면서 이런 생각과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트랙 데이에서는 아무리 본인 실력의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결국 본인의 한계를 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레이스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실력의 누군가를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목표 한계치와 경험 자체가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설정된다. 가령 트랙 데이에서는 비가 오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동차 성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
하지만 레이스라는 상황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위험할 만큼 아슬아슬한 노면의 접지력을 찾아서 씨름하면서도 경쟁자를 추월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 트랙 데이와 레이스는 경험치 자체가 다르다. 진짜 운전을 잘하고 싶고, 또 배우고 싶다면 자동차 레이스에 도전해야 한다.

올해는 특히 매 라운드마다 쟁쟁한 실력을 가진 경쟁자와 함께 달리며 박진감 넘치는 모습이 많이 연출된 해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배틀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에도 큰 공부가 됐다. 특히 자동차 레이싱은 나 혼자 잘해서는 안 되는 스포츠다.
함께 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를 추월하거나, 추월 당하는 것도 서로 호흡을 맞춰야 한다. 시속 200km로 앞 차의 꽁무니 바로 붙어서 달리면서 추월 기회를 보고 있을 때는 내 실려도 믿어야 하지만, 앞선 선수의 실력에도 믿음일 있어야 한다. 그가 내 공격을 인지하고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대응해줘야 하니까 말이다.
레이스 상황에서 누군가를 멋지게, 자연스럽게 추월하는 모습을 봤다면 그건 추월한 드라이버 말고도 추월 당한 드라이버의 실력도 뛰어나다는 증거다.

Q 앞으로 레이스 부분의 커리어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을까?
김: 당장은 2026년 스폰서 십을 구하고 있다. 래디컬 SR1 클래스에서 시즌 챔피언을 확정과 함께 앞으로는 래디컬 SR10이라는 가장 상위 클래스에도 도전해볼 계획이다. 물론 그러려면 개인 단위로도 팀 단위로도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향후에는 래디컬 컵 코리아 외에도 현대 N 패스티벌의 N1 컵, eN1 컵 같은 클래스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많은 선배 드라이버들이 만들어둔 기회를 따라서, 앞으로도 자동차 레이싱 분야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이러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