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칼럼]관세 장벽 시대, 가상자산이 열어주는 무역 탈출구

2025-10-14

세계 무역 체계는 최근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관세 전쟁 첨예화로 큰 도전에 직면했다. 기업은 수출입 절차에서 복잡한 통관 심사, 규제 준수 비용, 지연에 따른 물류 비용 부담 등을 감수해야 한다. 또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가격 경쟁력은 약화되고, 마진이 줄어드는 압박도 커진다. 무역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은 환율 변동 리스크, 결제 지연, 계약 리스크, 현지 통화 지급 조건 변화 등 다양한 부가 리스크에 노출된다. 특히 결제에서는 중개 금융기관, 환전 수수료, 자금 동결 위험 등이 문제된다. 이런 복합 비용은 관세 자체보다 더 큰 경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위협 속에서 가상자산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가진 국경 초월성과 분산 구조 때문이다. 특히 결제 및 송금 수단으로서의 가상자산은 기존 금융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적 가치 이전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다. 이는 통상 법정화폐에 일대일로 연동돼 가치 변동성을 최소화한 디지털 자산이다. 예컨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1스테이블코인이 항상 1USD 가치로 유지되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안정성 때문에 국제 결제에서 실질적 수단으로 점차 채택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스테이블코인의 총 전송 거래액은 약 27.6조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비자(Visa)·마스터카드(Mastercard)의 결제 규모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수치다. 이는 암호화폐 거래소간 송금 등이 포함된 수치임을 고려하더라도 막대한 규모다. 최근 금융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감지하고 있다. 예컨대 여러 유럽 은행들은 유로 기반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며,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규율하는 법안(GENIUS Act)이 제정돼 가상자산의 결제 기능 확대를 지원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렇다면 가상자산은 실제로 보호무역이나 관세 충격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다음은 몇 가지 구체적 메커니즘이다. 첫 번째는 결제 절차 간소화 및 비용 절감이다. 기존 무역 결제는 수출업자→은행→환전→수입국 은행→수입업자 순으로 복잡한 중개 구조를 거친다. 중간 단계마다 수수료, 환전 비용, 규제 심사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는 블록체인상에서 직접 송금이 가능하다. 중개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므로 결제 비용과 중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는 관세율 자체를 제거하지는 않더라도, 관세 부가 이후 발생하는 추가 금융·행정 비용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두 번째는 환율 리스크 헷징 기능이다. 보호무역 환경에서는 각국 통화가 요동치기 쉽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가 강한 무역 제재를 당하면 그 나라 통화는 급락할 수 있다. 이러한 환율 변동성은 수출입 기업에 큰 리스크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기준 통화로 삼으면, 통화 가치 변동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 기업이 미국과 수출거래를 할 때, 미국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면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 없이 거래가 가능해진다. 세 번째는 스마트 계약 기반 조건부 지급이다. 블록체인에서 스마트 계약을 활용하면, 무역거래의 지급 조건을 자동화할 수 있다. 예컨대 물품이 선적지에 도착하고 검역·검수 절차가 완료되면 자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지급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이는 거래 상대국의 임의적 규제 강화나 통관 지연에 따른 비용·위험을 줄이는 수단이 된다. 네 번째는 지역 간 교역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일부 국가들은 특정 스테이블코인을 무역 결제 네트워크로 채택해 상호 교역망을 형성할 수 있다. 예컨대 아시아 지역 국가들끼리 공통의 디지털 결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면, 기존 통화 체계가 아닌 대체 결제망이 형성될 수 있다. 이는 강대국 간 관세 전쟁의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가상자산이 보호무역 충격을 완전히 무력화해 주는 만능 솔루션은 아니다. 첫째,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 체계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필수적이다. 일부는 발행사의 준비금 리스크, 감사 불투명성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둘째,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처리 속도, 수수료, 확장성 문제가 현실 제약으로 남아 있다. 셋째, 각국 규제당국이 가상자산을 결제 수단으로 공식 인정할지 여부가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무역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기업들에는 대체 결제 수단이 필요하다. 가상자산은 기존 금융 시스템의 대체 경로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무역비용 절감, 환율 리스크 완화, 스마트 계약 기반 자동화 지급 등 구체적 메커니즘을 통해 보호무역 충격을 경감할 수 있다. 앞으로 각국이 가상자산 규제를 정비하고, 무역 결제 실험 사례가 늘어나면, 가상자산은 단순한 투자 자산을 넘어 '무역 인프라'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기업들은 이런 대안들을 주의 깊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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