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투자자들의 수천억원대 손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또 다른 돌발변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는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대규모유통법과 같은 경직된 규제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이 홈플러스 사태가 콘텐츠 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홈플러스 사태는 사모펀드의 차입 인수, 투자 부족, 온라인 쇼핑 전환 실패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했지만, 대규모유통법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대규모유통법은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과 같은 유통 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규제를 적용해 기업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러한 경직된 규제가 기업의 특성과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할 경우, 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산업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와 같은 규제의 역효과는 콘텐츠 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콘텐츠 산업은 유통 산업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OTT 플랫폼, 웹툰, 웹소설 등 새로운 콘텐츠 형식의 확산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 등 혁신적인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콘텐츠 산업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특히 산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도입되는 경직된 규제는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고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간 논의된 콘텐츠 산업 내 규제 중 하나인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하 문산법)도 이러한 우려의 연장선상에 있다. 콘텐츠 산업의 특성과는 동떨어진 규제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산업의 성장 동력을 꺾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대규모유통법은 일반 상품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급변하는 유통 환경을 반영하지 못해 홈플러스 사태와 같은 위기를 초래한 바 있다. 하물며 이를 콘텐츠 산업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그 부작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문산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금지 행위 조항이 대규모유통법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이다. 콘텐츠는 일반 상품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창작자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집약된 창작물이며, 유통 방식 또한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콘텐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상품에 적용되는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콘텐츠 산업의 현실과 동떨어진 접근이며,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웹툰, 웹소설 등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인 규제는 '기다리면 무료'와 같은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판매 촉진 비용 전가'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어, 창작 환경을 보호하기는커녕 신인 창작자의 시장 진입 기회를 줄이고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
실제로 '기다리면 무료' 비즈니스 모델은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중요한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이 모델은 온라인 사용자의 행동을 깊이 있게 분석해 디지털 콘텐츠 소비 문화를 크게 변화시켰고, 웹툰 산업의 성장에 핵심적인 모멘텀을 제공했다. 사용자의 심리적 투자를 유도하고,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며,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게 만드는 '습관적 소비 구조'를 창출해냈다. 카카오페이지의 사례에 따르면, 이 모델 도입 후 웹툰 매출은 994.6%, 웹소설은 3,545.2%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단순한 프로모션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 콘텐츠 유통의 본질적 혁신에 가까운 변화였다.
이처럼 시장은 끊임없이 실험하고 진화하는데, 규제가 과거의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면 산업은 결국 정체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규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현실에 맞게 설계되고 운용되느냐는 점이다. 홈플러스 사례는 경직된 규제가 전체 산업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며, 콘텐츠 산업 역시 그 위험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규제의 취지가 선의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산업의 복잡성과 빠른 변화,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 의도는 오히려 시장의 반발로 돌아올 수 있다. 법의 목적이 시장을 보호하는 데 있다면, 먼저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지나치게 앞서가는 시장은 위험하지만, 뒤처지는 규제는 훨씬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콘텐츠 업계 역시 규제로 인한 유통 산업의 부작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smjeon@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