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국립국악원(원장 직무대리 강대금, 이하 국악원)은 서양 클래식 명곡을 국악기로 새롭게 해석한 음반, 「생활음악 시리즈 26집」을 오는 5월 2일(금)부터 전 세계 주요 온라인 음원 플랫폼과 국악아카이브(archive.gugak.go.kr)를 통해 공개한다.
클래식과 국악의 새로운 접점,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음악
이번 음반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세대와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클래식 명곡 16곡을 국악으로 재편곡한 넘나들기(크로스오버) 프로젝트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친숙한 클래식 곡들을 기반으로, 국악 특유의 음색과 감성을 더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음반 표제곡 비발디의 ‘사계 – 봄 1악장’,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4악장’, 라벨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 이 세곡은 원곡의 정서와 계절감을 살리면서도 국악기의 풍부한 음향으로 새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장르의 경계를 넘은 4인의 편곡자, 국악기로 빚어낸 새로운 고전의 감성
이번 음반에는 국악과 서양 음악을 아우르는 네 명의 작곡가가 참여해, 국악기의 고유한 음색과 연주 특성을 클래식 명곡 속에 절묘하게 녹여냈다. 이들은 각각의 음악 세계를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감성을 교차시키며, 익숙한 선율에 낯선 울림을 더해 새로운 감각을 창조했다.

양승환 작곡가는 국악 작곡과 컴퓨터음악, 서양 클래식 작곡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배경을 바탕으로, 비발디의 ‘사계 – 봄 1악장’과 쿠프랭의 ‘수도원 미사곡 중에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포레의 ‘꿈꾼 후에’ 등을 국악기 중심으로 섬세하게 재구성했다. 전통 악기의 음색적 깊이를 바탕으로 서정성과 구조미를 함께 살려내며, 고전음악이 지닌 정서에 품격 있는 감성을 덧입혔다.
이지수 작곡가는 영화ㆍ드라마ㆍ무대음악에서 활동해 온 풍부한 서사적 감각을 바탕으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 2·4악장’, 라벨의 ‘볼레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생상스의 ‘백조’를 편곡했다. 특히 ‘신세계로부터 4악장’에는 록적인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를, 「볼레로」에는 장단의 반복성과 국악 관악기의 확장된 음향을 더해 원곡의 힘과 긴장감을 색다르게 재구성했다.
김진환 작곡가는 영화·OTTㆍ무용음악 등 대중문화 기반에서 축적한 감각을 바탕으로, 그리그의 ‘아침의 기분’과 ‘솔베이지의 노래’, 라벨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 보로딘의 ‘폴로베츠인의 춤’, 발트토이펠의 ‘스케이터 왈츠’ 등을 따뜻하고 서정적인 국악-로파이(Lo-fi)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보컬 서도(sEODo, 서도밴드 보컬)와 함께한 ‘솔베이지의 노래’는 아쟁과 보컬의 애절한 조화를 통해 앨범의 감정적 중심을 이룬다.
김영상 작곡가는 국악작곡 기반 위에 대중음악과 K-클래식 편곡까지 아우르며, 국악의 확장성과 대중성과의 접점을 실험해 왔다. 비발디의 ‘사계 - 여름 3악장’과 드뷔시의 ‘달빛’에서는 해금, 아쟁 등 찰현악기의 묘한 긴장과 부드러움을 살려 인상주의적 서정을 극대화했다. SM Classics와의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국악의 음향을 현대화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지하철 환승음악부터 음원차트까지" - 국악, 이제는 생활 속 필수 배경음악
「생활음악 시리즈」는 2007년부터 이어진 국립국악원의 대표 창작 프로젝트로, 국악의 생활화를 목표로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허물어왔다. 이번 26집은 국악기로 서양 고전 명곡을 연주한다는 시도를 통해, 정교한 편곡과 연주로 장르의 감각적 융합을 이뤄냈다.
특히 국악원의 생활음악은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지하철 환승음악으로 사용되어 매일 수백만 시민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으며, 최근 음원 플랫폼에서는 "집중할 때 듣기 좋은 국악 플레이리스트"로 MZ세대 사이에서 공유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생활음악 시리즈 여러 음원 사이트 '클래식 & 크로스오버' 차트에서 상위권을 기록하며 국악의 대중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국립국악원의 이러한 시도는 전 세계적인 전통음악 혁신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 '네오-가가쿠(Neo-Gagaku) 프로젝트'는 가가쿠(雅樂)와 현대 전자 음악을 융합해 문화 보존과 혁신의 균형을 이룬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핀란드 보컬그룹 ‘투울레타르(Tuulrtar)’는 전통 현악기인 칸텔레를 활용한 대중음악 창작 음반(할자루타(Haljarouta))으로 전 세계 실시간 재생(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악원의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전통음악이 동시대성과 세계성을 함께 갖추려는 노력을 상징하는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창작악단의 정교한 연주, 그리고 보컬 서도(sEODo)의 깊은 울림
수록곡 전반에 걸쳐 국악원 창작악단의 연주는 음반의 중심축을 이룬다. 대금, 해금, 가야금, 소금, 생황 등 다양한 국악기의 음색은 국악 고유의 표현 방식으로 클래식의 서사와 감정선을 치밀하게 재현해 낸다. 국악기는 구조적으로 평균율을 기반으로 한 서양 음악과 음계 체계가 달라 클래식 곡 연주에 높은 난도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창작악단은 정교한 기교와 해석력으로 원곡의 미묘한 뉘앙스까지도 국악기만으로 표현하며, 전통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였다. 이번 앨범을 통해 이들의 탄탄한 실력과 해석력이 왜 국내외에서 높게 평가받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음반에는 국악과 대중음악을 잇는 조선팝 창시자이자 독보적인 음색의 서도(sEODo)가 협업(피처링)으로 참여해 깊은 감성을 더했다.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 가운데 솔베이지의 노래’에서 서도는 아쟁 반주와 어우러지는 섬세한 창법으로 클래식과 국악, 보컬의 결을 매끄럽게 연결한다. 특유의 짙은 음색은 국악의 감성과 서양 음악의 서정성을 한데 아우르며, 앨범 전체의 감정적 중심을 이루는 트랙으로 주목받는다.
클래식 거장들과 국악의 유쾌한 상상력
음반 표지는 일러스트레이터 스노우캣(권윤주)이 작업을 맡아 동서양 음악의 조우를 재치 있게 풀어냈다. 베토벤, 슈만, 드뷔시, 라벨 등 클래식 거장들이 국악기를 연주·감상하는 모습을 일러스트로 표현하여, 청각적 넘나들기(크로스오버)를 시각적으로도 흥미롭게 형상화했다.
국악원 생활국악 사업 담당자는 "가정의 달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번 음반은 익숙한 클래식 선율을 국악의 새로운 음색으로 경험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특히 비발디의 ‘봄’,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등 계절감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표제곡들이 5월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많은 분께 평안과 활력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음악 시리즈 26집」은 5월 2일(금)부터 스포티파이, 유튜브뮤직, 벅스, 멜론 등 전 세계 주요 음원 승강장(플랫폼)과 국악아카이브(archive.gugak.go.kr)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