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 "30여년 여행업계 노하우, '관광도시 서울' 위해 쏟을 것"[CEO & Story]

2025-08-27

“광화문광장으로 피서를 떠난다고?”

고층 빌딩과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한여름 광장으로 피서라니…. 엉뚱하기 그지없어 보이던 이 얘기는 2023년 ‘서울썸머비치’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됐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 대형 워터슬라이드와 물놀이장, 파라솔로 둘러싸인 비치(해변)로 탈바꿈한 것이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유명 바닷가나 워터파크처럼 물놀이를 즐기려는 가족·연인들로 광화문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광장이 해변으로 변신한 첫해, 하루 4만 명씩 17일간 총 68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듬해는 하루 5만여 명씩 89만 명이 몰렸고 올여름에는 3주 동안 총 146만 명이 방문하면서 하루 7만 명이 찾는 ‘초대박’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도심 속 광장을 해변으로 만들자는 역발상은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바로 길기연(65) 서울관광재단 대표다. 대박 난 아이디어는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인들이 서울의 산을 더 편리하게 즐길 수 있게 돕는 서울 등산관광센터, 한국의 다채로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상설 공간인 ‘서울컬쳐라운지’ 등도 길 대표와 재단이 만들어낸 히트 상품이다.

그 덕분일까. 2021년 7월 취임한 길 대표는 2024년 한 차례 연임한 데 이어 올 7월에는 재연임에 성공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전폭적인 신뢰 덕분에 내년 7월까지 총 5년간 서울관광을 이끄는 공공기관의 수장 역할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공기관 대표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길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초기 부족한 서울의 관광 콘텐츠를 다각화하려고 애썼고, 어떤 어려움이 있든지 새로운 아이디어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길 대표 취임 당시만 해도 관광 업계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전 세계를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 때문이다. 길 대표는 “다들 새롭게 시도하기를 머뭇거렸지만 그때가 바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봤다”며 “비교적 감염에 자유로운 야외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다녔다”고 떠올렸다.

남들보다 항상 한발 앞서 생각하려 했던 그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도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재개될 때 더 많은 외국인이 서울을 찾게 만들려면 어떤 관광 콘텐츠가 필요할까’를 궁리했다. 이런 생각으로 골몰하던 그에게 어느 날 독일에서 온 지인이 말했다.

“서울은 도심과 산이 매우 가깝고 대중교통 또한 잘 갖춰져 외국인이 등산하기에 최적의 도시예요.”

얘기를 듣던 길 대표는 무릎을 ‘탁’ 쳤다. 유럽이나 미주 등지는 도시에서 차로 몇 시간을 나가야 산에 오를 수 있다. 반면 서울은 지척에 산이 널려 있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등산이 가능하다. 그는 “외국인에게 등산화나 스틱·배낭 등을 빌려주는 비즈니스를 떠올렸다”며 “다른 목적으로 서울을 찾은 외국인도 편하게 등산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관광 콘텐츠가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바로 설문 조사 기관에 의뢰해 사업 가능성을 파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많은 외국인이 익히 알고 있는 K팝이나 K뷰티 외에도 ‘K등산’이라는 콘텐츠가 서울을 찾는 외국인에게 매력적일지 알아보는 작업이 필요했다.

설문 조사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외국인 응답자의 82.8%가 서울의 트레킹 코스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등산화 등 장비 대여 서비스를 활용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83.1%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감을 얻은 길 대표는 강북구·블랙야크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2022년 9월 북한산우이역 인근에 등산 장비를 빌려주고 샤워도 할 수 있는 서울 도심 등산관광센터 1호점을 개관했다. 이후 센터는 북악산에 2호점, 관악산에 3호점을 열었고 누적 방문객은 올 6월 10만 명을 넘겼다. 길 대표는 “첫 임기 때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부산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도 이어지고 K등산이라는 새로운 한류를 이끌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평가했다.

사실 길 대표는 여행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어지간해서는 여권을 발급받기도 쉽지 않았던 1980년대 ‘우리나라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사에 취업한 그는 입사 초기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그에게 퍼시픽아일랜드클럽(PIC)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괌·사이판 등에서 리조트를 운영하는 미국계 업체였다. 그렇게 1990년 괌으로 거점을 옮긴 길 대표는 그곳에서 적지 않은 일본인 관광객을 만났다. 해외로 신혼여행을 온 이들이었다.

“우리는 기껏해야 강릉이나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던 시절인데 일본은 해외 신혼여행이 한창 인기더라고요. 우리나라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만큼 곧 해외 신혼여행 바람이 불 거라고 예상했지요.”

길 대표는 1992년 직접 여행사를 차렸다. 업체명은 허니문여행사. 해외로 ‘허니문’을 떠나려는 신혼부부가 주요 타깃이었다. 대형 호텔 연회장을 빌려 신혼여행 상품 설명회를 열고 괌·사이판 등지에서 ‘사랑의 별빛축제’ 같은 신혼부부 대상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길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주말 김포공항에는 우리 고객이 100명 넘게 줄을 섰지만 타사 고객은 10명 안팎에 그쳤다”며 “대형 여행사들이 흐름을 읽지 못한 사이 우리가 시장을 거의 독식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의 ‘선구안’은 코레일관광개발 대표 시절에도 빛났다. 당시만 해도 식음료 판매, 승무원 위탁 관리 등이 주 사업이던 이 회사에서 길 대표는 열차를 활용한 새로운 여행 상품 개발에 나섰다. 여행 관련 경력 사원 40여 명도 새로 채용했다.

“봄에는 ‘벚꽃 열차’,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 가는 열차, 가을에는 내장산 가는 ‘단풍 열차’, 겨울에는 태백산 가는 ‘눈꽃 열차’ 등 내놓는 새 상품마다 인기가 엄청났어요.”

외국인을 불러 모을 상품도 선보였다. 드라마 ‘겨울연가’를 추억하는 일본인 팬들을 위해 남이섬으로 가는 관광 열차를 기획했고, 국내 첫 호텔식 관광 열차인 ‘해랑’은 일본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길 대표는 “취임 초기 직원들은 저에게 ‘사장님, 그냥 도장만 찍다가 가시라’며 새로운 사업을 만들려는 저를 말리더라”며 “만류에 못 이겨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과는 맛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길 대표가 서울관광재단을 이끈 지도 4년여. 취임 초기와 비교하면 ‘관광도시 서울’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서울에 방문한 외래 관광객은 1200만 명, 대한민국 전체로는 1600만 명을 넘어섰다. 길 대표는 “관광객 증가는 K팝·K콘텐츠·K푸드 등 여러 방면에서 서울과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추세에 맞춘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공한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봤다.

그동안 관광도시 서울이 지향하는 목표 역시 양에서 질로 바뀌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2023년 ‘서울관광 미래비전 3377’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서울을 외래 관광객 3000만 명, 1인당 300만 원 지출, 평균 체류 기간 7일, 재방문율 70%의 글로벌 관광도시로 만들자는 목표가 담겼다.

서울관광재단이 마이스(MICE) 관광객 유치에 주력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굴뚝 없는 황금 산업’으로도 불리는 마이스 산업은 싱가포르,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 빈 등이 전통 강호였으나 최근에는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적극 뛰어들었다. 최근 K팝·K콘텐츠 등이 인기를 얻고 마곡 코엑스 등 유·무형 인프라가 점차 확충되는 만큼 우리도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국제협회연합(UIA)의 국제회의 개최 도시 평가에서 서울은 최근 세계 3위, 아시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길 대표는 올해를 ‘서울 관광 지방 상생 원년’으로 선포하는 등 지방과의 상생 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이다. 그는 “서울 관광만 발전해서는 외래 관광객 3000만 명, 재방문율 70%라는 목표 실현에 한계가 있다”며 “우리가 프랑스 파리에 갔다가 니스·칸도 가고, 일본 오사카에 가면 교토나 나라·고베도 들르듯이 서울을 찾은 관광객 역시 지방에 들를 수 있게 서울과 지방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1년, 길 대표는 ‘예술 관광’ 활성화에도 힘쓸 계획이다. 그는 “서울이 벤치마킹하고 뛰어넘어야 할 파리와 런던·뉴욕의 공통점은 세계적 미술관과 수준 높은 예술 행사들이 수많은 방문객을 불러 모은다는 점”이라며 “관광 트렌드도 점차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 관광 분야 민관 협의체로 지난달 발족한 ‘서울 예술관광 얼라이언스’는 그 일환이다. 길 대표는 “‘포스트 한류’ 시대 서울이 예술과 문화로 기억되는 도시가 되도록 선도적으로 예술 관광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He is…

△1960년 충남 금산 △한양대 관광학 박사 수료 △1992~1998년 허니문여행사 대표 △1998~2002년 제5대 서울시의회 의원 △2009~2011년 코레일관광개발 대표 △2021년~ 서울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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