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전 합참 공보실장이 말하는 ‘군인의 길’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군의 사기와 위상은 땅으로 떨어졌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효식 전 합참 공보실장(사진)이 이와 관련한 글을 보내왔다. 엄 전 실장은 육사 졸업 이후 정훈병과 장교로서, 30여년 간 국방부와 합참, 육군본부 등 다양한 직책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수행한 국방관련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합참 정책자문위원이다. 대령으로 전역해 군대 생활 소통 커뮤니티 ‘마편’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순간이 있다.
1987년 6월 29일도 그런 날이었다.
소위 임관하여 소대장으로 근무한 부대는 강원도 인제 가리산 중턱에 있던 특공연대였다. 소대원 10여명은 다들 우락부락했고, 임무가 부여되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든든한 전투원들이었다. 당시는 북한이 건설할 금강산댐이 폭파되면 대한민국 북한강 일대와 서울이 온통 물에 잠긴다는 뉴스가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었고, 그러한 북한의 수공위협에 대비한 군사적 대응 논의가 한창이었다.
1987년 4월, 군단장의 특별명령으로 우리는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아 강원도 양구지역 최전방 GOP(휴전선을 지키는 육군 경계 부대)로 행군이동을 했다. 우리는 수색과 정찰, 매복작전 등을 수행하면서 혹시 모를 북한의 도발에 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긴급 명령이 도착했다.
그해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하는 와중이었다. 새로운 임무, 즉 시위지역으로 투입될 수 있으니 모든 작전활동을 중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개인별로 야산에 있는 참나무로 진압봉을 만들고, 시위진압 훈련을 반복했다. 당시 중대원들은 수색매복 작전보다 진압훈련을 더 힘들어했다.
후방 소식을 알 수 있는 채널은 라디오밖에 없었다.
연일 들려오는 뉴스는 심각했다.
우리가 곧 투입되겠구나, 하는 암울한 짐작을 했다.
지금의 MZ세대와는 다른 구식 청춘들이었지만, 다들 답답한 표정으로 걱정했다. 비슷한 나이의 또래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난감해하는 상황이었다. ‘제발 안 갔으면 좋겠다’는 게 공통적이었다.
그들은 물어왔지만, 답변할 수 없었다. 나 역시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6월 중순경, 강원도 원주지역의 대학교로 부대가 이동할 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때부터 대학교의 위치와 지형지물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