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란다 농부’ 입니다

2025-08-22

내 집 안, 한 평의 초록

도심 속 작은 정원 ‘베란다 텃밭’

회색빛 아파트의 작은 베란다 한 쪽, 상추와 토마토가 파릇하게 자라난다. 아침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스며들면 진한 흙냄새가 도심의 소음을 잔잔히 덮는다. 최근 SNS에서 붐을 이루는 ‘베란다 텃밭’ 풍경이다. 베란다 텃밭은 집 안에서 상추, 토마토 등 채소를 소규모로 재배하는 방식으로 흙과 화분, 간단한 용품 그리고 베란다 한 평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일상을 바꾼 정원

인플루언서 이현실씨(@gonggan_simda)에게 텃밭은 오랫동안 ‘막연한 로망’이었다. 주말농장을 꿈꾸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에 실행하긴 어려웠다. 그러다 안방과 연결된 작은 화단이 있는 지금의 집을 만나 이전 주인의 상추와 토마토 재배 이야기를 들은 순간, 흥미가 싹트기 시작했다.

“예전에 지은 아파트라 화단 공간에 배수관 처리까지 돼 있어 흙을 직접 채워 텃밭처럼 활용할 수 있어요. 덕분에 큰 화분을 놓은 듯 안정감 있게 다양한 작물을 기를 수 있죠.”

텃밭에는 계절마다 다른 색과 향의 채소와 허브가 어우러진다. 봄이면 상추와 쌈 채소가 초록빛으로 가득하고 여름에는 방울토마토와 깻잎, 케일이 색을 더한다. 특히 지난해 가을, ‘농약 없이 키운 배추 모종으로 담근 김치’ 영상은 조회수 600만회를 기록하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텃밭 관리의 핵심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매일 들여다보고, 환경에 맞게 물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식물 킬러’였던 이씨도 잎사귀 하나 하나를 살피며 식물이 필요로 하는 조건을 이해하게 됐다. 무엇보다 값진 건 정성으로 키운 식물들이 가족의 식탁과 일상에 활력을 준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쌈이 없으면 고기 굽기를 주저했는데, 이제는 베란다에 나가 채소를 따면 되니 부담이 없어요. 식물에 관심 없던 남편과도 베란다 테이블에서 꽃향기를 느끼며 차 한 잔을 곁들인 대화를 즐기게 됐죠. 작은 공간이지만 우리 가족의 하루가 조금씩 여유로워졌습니다.”

나만의 작은 초록 일터

온라인 리빙숍을 운영하는 복예리씨(@chaechae._.house)에게 베란다 텃밭은 ‘작은 쉼터’다. 집 안 작업실에 홀로 머무는 시간이 길어 답답하고 외로움을 느끼던 그는, 우연히 SNS에서 텃밭 게시글을 보고 베란다 한쪽을 ‘녹색 공간’으로 바꿨다.

햇살이 알차게 닿는 베란다에는 방울토마토와 찰토마토, 청양고추가 알알이 매달리고, 바질과 로즈메리가 은은한 향을 퍼뜨린다. 여기에 몬스테라와 호프셀렘 같은 관엽식물이 곳곳에 자리하며 생기를 더한다.

“물을 주고 흙을 만지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우리 식탁의 먹거리가 농부들의 손끝에서 온다는 것도 새삼 느끼고요. 아이들과 함께 키우면 교육적인 재미도 있어요.”

좁은 공간이라 키울 수 있는 작물은 제한적이고, 흙과 잎이 자주 떨어져 청소가 필요하지만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샐러드 한 접시는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한다. 매년 조금씩 새로운 채소를 들이며 복씨의 베란다 텃밭은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때는 토마토만 50여그루를 심었다가 관리 부족으로 모두 흰가루병에 걸려 처분해야 했어요. 농약을 쓸 수 없는 베란다 특성상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죠.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실험실이 된 텃밭

앱 개발자인 손아진씨(@zinzercookies_)에게 베란다 텃밭은 ‘작은 실험실’이다. 흙과 씨앗, 물과 빛을 변수 삼아 매일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흙에서 키운 토마토와 물에서 키운 토마토의 맛은 다를까? 벌레가 생기지 않으면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조합은 무엇일까? 텃밭은 저의 이런 호기심을 채워주는 재밌는 공간이에요.”

처음 텃밭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신선한 재료를 제공하고 채소값을 아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씨앗이 자라면서 목적이 달라졌다. 작은 잎과 줄기 하나까지 살피며 환경을 조절하는 과정이 하루를 새롭게 계획하는 루틴이 됐다.

최적의 환경을 찾아가는 과정은 개발자가 코드를 디버깅하며 최적화하는 과정과 닮았다. 진딧물 방제에 실패해 모든 작물을 정리해야 했던 경험도 있지만, 남편과 함께 친환경 방충제를 만들어 매일 살피는 과정에서 다음 실험의 데이터가 쌓였다.

“전에는 출근 준비로 하루를 시작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쓰러져 잠드는 날이 많았어요. 하지만 베란다 텃밭을 시작한 뒤 삶이 조금 더 부지런해졌습니다. 무언가를 가꾸는 것 자체가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더라고요.”

도심 속 작은 정원 ‘베란다 텃밭’ 초보자 가이드

· 초보용 작물: 상추와 방울토마토는 자주 수확할 수 있어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바질, 고수, 애플민트 등 허브류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요리 활용도가 높다.

· 화분 선택: 자동 급수 화분을 추천한다. 물 빠짐이 좋아 뿌리 부패를 예방하며 공간 활용에도 유리하다. 텃밭용 흙과 친환경 비료를 사용하면 좋다.

· 물 주기와 통풍: 규칙적인 시간에 흙 상태를 확인하며 물을 주고, 창문을 열어 자연통풍을 유도한다. 햇빛이 부족하면 인공조명을 활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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