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캠 단지 인신매매, 정치와 미디어의 ‘아무 말’

2025-10-20

사람 본모습은 그가 바닥을 칠 때 드러난다는 말처럼, 한 사회의 성숙함은 충격적 사건 앞에서 공동체가 보이는 모습에 달려 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스캠 단지에서 일어난 감금·폭행·강제노동 등 인신매매 범죄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정치권은 이때가 기회라며 짐짓 분노한 표정으로 강경 발언을 쏟아낸다. 아예 외교를 포기한 듯하다. 미디어도 이를 제목으로 삼아 자극적 보도를 일삼는다.

“ODA(공적개발원조) 환수”를 외치는 정치인은 캄보디아에도 인신매매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까? 캄보디아는 한국전쟁 당시 물자 지원국이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재고”를 말하지만, 정작 가장 많은 스캠 피해를 겪고 범죄 근절에 갖은 수단을 다하는 것도 중국인이다. 한국은 “군대 투입” “전쟁 선포”를 선동하며 “범죄도시”라 혐오하지만, 한류 덕에 캄보디아 사람도 그 글자들을 읽을 줄 안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분쟁으로 캄보디아 사람들은 킬링필드의 기억을 떠올리며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정치권과 미디어는 피해자 비난과 ‘순수한 피해자’ 찾기에 열중한다. 피의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라는 주장은 조직적 범죄가 구축한 폭력 시스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피해와 가해, 자발성과 강제성의 경계는 선명하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군속으로 자원해 포로감시원으로 배치됐던 조선인들은 전쟁 직후 포로 학대를 이유로 B·C급 전범으로 기소돼 처벌받았다. 아사자가 속출한 열악한 환경에서 연합군 포로의 강제노동 관리 임무를 맡은 최말단 조선인들은 거부할 수 없던 명령의 피해자일까? 아니면 임무를 수행하고자 폭력을 가하기도 했던 가해자일까?

분명한 것은 ‘순수한 피해자’란 가해자가 구축한 폭력의 합리화 논리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인신매매의 경우, ‘인신매매 등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가해자의 범죄 성립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피해자가 행한 범죄 행위는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도록 했다.

정치와 미디어가 선동하는 지독한 자국민 중심주의와 피해자 비난은 공통의 인식에 기반한다. 스캠 단지 인신매매는 평화로운 일상을 갑작스레 침범한 외부 위협이고, 그 위협과 연관된 모든 것을 비난하며 자신과 무관한 일처럼 여김으로써 일상 안전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조차 이주민 성매매와 강제노동 등 인신매매가 일상화돼 있다. 안온한 일상은 타인의 고통을 무시할 때 가능한 것이다.

스캠 범죄는 한국인을 모두 구출하고 강력히 단속한다 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범죄조직은 항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준비가 돼 있고, 범죄 원인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는 인신매매 관행, 글로벌 불평등, 규제 없는 플랫폼 산업, 세계적인 청년 실업과 경제난 등이 뒤섞여 있다. 더욱이 헤게모니를 잃어가는 미국과 대안 제시에 실패한 중국 사이에서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혼란은 지금처럼 공동체와 삶을 위협하는 ‘인간 안보’ 위기의 토양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지역질서를 향한 비전 부재가 사회의 혼란을 낳는다. 한국 정치가 혐오와 ‘아무 말’을 쏟아내는 것도, 사태를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할 전략과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국인 구출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어떻게 인간 안보의 지역질서를 구축할 것인가? 스캠 범죄를 추적하고 그에 연루된 권력을 견제하려면 현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성장이 필수다. 스캠 범죄가 보여주듯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이에 대응할 아시아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어떤 아시아가 되어야 하는가? 내전, 분단 등은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 글로벌 사우스의 역사다. 그 역사를 딛고 가장 멀리 나아간 민주주의와 한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한국은 이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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