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간첩몰이에 희생…무죄 받았지만 누가 책임지나

2025-10-19

윤석열 정부에서 대규모로 수사한 간첩단 사건, 2명 최종 무죄 확정

“간첩 사건은 유죄추정의 원칙…국정원, 유감 말고 제대로 사과해야”

[주간경향]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8개월여 만인 2023년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간첩 수사를 위해 압수수색을 한다는 명분이었다. 국정원 등은 이날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경기 수원, 제주와 전남 담양에서도 동시다발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 사건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을 간첩단으로 몰아 억압한 일은 많았지만, 민주정부 이후 보기 드문 대대적이고 요란한 간첩 수사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9월 25일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신동훈씨(55·제주평화쉼터 대표), 양기창씨(57·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에게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2년 9개월간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시달렸던 간첩 낙인에서 비로소 벗어났지만 이들은 편하게 웃을 수 없다. 일상은 붕괴되고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남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지난 10월 1일 유감을 표하는 짤막한 입장문을 냈다. 국정원의 이례적인 입장 표명에 언론이 주목했지만, 신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은 그조차도 없다. 국가의 간첩몰이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지는 이는 없는 것이다.

이 사건 단초가 된 인물은 민주노총 간부였던 석모씨(징역 9년 6월 확정)다. 국정원은 석씨와 아는 사이였던 신씨가 2017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양씨는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것을 문제 삼았다. 두 사람이 국가에 위해가 됨을 알면서도 북한 공작원을 접촉해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혐의를 씌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국정원은 당시 두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수사기록에 두 사람이 해당 국가들에 입국해 호텔방을 오가는 모습 등을 촬영한 자료가 첨부돼 있었다. 압수수색으로 강제수사에 착수한 때는 2023년 초지만, 훨씬 전부터 정보를 몰래 수집해온 것이다. 몇 명의 수사관이 언제부터 어떤 방법으로 감시 활동을 했는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국정원 캐비닛에 묵혀 있던 이 사건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갑자기 터졌다.

신씨는 “간첩 사건에선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압수수색 당일 그가 운영하는 쉼터 건물로 가자 국정원과 경찰 직원 수십 명뿐 아니라 방송 카메라 10여대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혐의는 이미 세상에 공개된 뒤였다. 압수수색에서 국정원이 가져간 물건은 건축프로그램이 들어 있던 외장하드, 책 <녹슬은 해방구> 등 몇 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 사이에 신씨는 여러 차례 조사를 받고 구속까지 됐다. 국정원은 강한 의심을 하면서도 신씨 말은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국정원 조사관이 북한 공작원을 만나 무엇을 했느냐고 추궁하고, 신씨가 있는 그대로 진술하면 ‘믿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국정원과 검찰은 신씨가 캄보디아의 한 공원에서 북한 공작원과 ‘눈빛 교환’으로 서로를 인식했고, 신씨가 그 북한 공작원을 따라가는 행적을 보였다며 불법적 회합이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당시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보며 신씨와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람이 마주친 찰나에 눈빛 교환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신씨는 “더운데 기다리는 사람이 안 나타나서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침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길래 쳐다봤는데 (국정원은) 그게 북한 공작원과 눈빛 교환한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속을 면해줄 테니 제대로 진술하라는 압박과 회유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진술하려 했는데 입을 열었을 때 ‘너희들끼리 말을 맞추고 오지 않았느냐’, ‘석씨가 시켰느냐’는 질문이 들어왔다”며 “그때부터 입을 닫게 됐다. 도저히 (수사기관을) 못 믿겠다 싶었다”고 했다.

국정원 측이 신씨 휴대전화에 저장됐다 삭제된 ‘파일명 도깨비’가 무엇인지 묻는 해프닝도 있었다. 드라마 <도깨비> 파일이었다. 신씨는 “조사관들이 (제주로) 내려와 ‘이것은 정말 중요한 내용이고, 이거 하나로 당신이 기소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면서 도깨비 파일이 뭔지 물었다”며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점점 의심을 받을 것 같아 힘들었다”고 했다.

1·2심 재판부 모두 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죄가 성립하려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북한)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했어야 한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돼야 한다. 법원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신씨가 간첩 활동을 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북한의 지령문에 신씨를 지칭하는 내용은 없었고, 신씨가 북한 공작원과 평상시 교류하거나 지령을 받아 활동한 내역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법원은 신씨가 사업과 관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해 북한 공작원인 줄 모르고 만났다는 데 손을 들어줬다. 평소 여러 차례 해외 방문 경험이 있고, 오히려 석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신씨 말이 수긍할 만하다고 했다. 캄보디아 공원에서 ‘눈빛 교환’을 했는지도 불분명하고, 만난 사람들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것을 알았는지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증거로 범죄를 입증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지만, 검사는 증거가 없는 이유까지도 신씨 탓을 했다. 증거가 어딘가에 있는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거나, 신씨가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주장이다. 2심 재판부는 “이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가능성에 불과하다”며 “신씨가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볼 만한 정황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양씨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베트남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기는 했지만 한국 현대사, 음식, 백두산, 소설책, 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는 양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양씨가 만난 사람이 북한 공작원인지 알지 못했고, 국가에 위해를 끼친다는 인식도 없었다는 것이다. 베트남 만남 이후 북한 공작원이 양씨에게 지령문을 보내거나, 양씨가 북한 측에 특정 사항을 보고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통일과 남북한 정세에 관심이 많고 시인이기도 한 양씨는 2000년대 초반 아리랑 축전 때 북한 평양에서, 또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 북한 사람들과 술을 마셔본 경험이 있었다. 당시엔 남북관계가 좋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간첩몰이가 또다시 시작된다.

“최대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해야”

간첩 수사를 받은 사람에게 무죄 판결은 끝이 아니다. 간첩 낙인 때문에 일상은 망가지고 인간관계도 파탄 난다. 국가의 간첩몰이는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 신씨는 무죄에 마냥 기뻐할 수 없다고 했다. 신씨는 “간첩이라는 말을 수백 번 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 떠오른다”며 “‘어디 어디에 간첩이 산다’는 말을 듣고, 어느 날부터 인사도 안 받는 사람들이 생긴 것을 생각할수록 굉장히 힘이 든다”고 했다. 양씨는 주변의 노동조합 간부들, 친구 등 6~7명이 국정원 조사를 받았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족과 주변 친인척, 지인들까지 ‘간첩 식구’나 ‘간첩 친구’ 프레임이 씌워졌다”며 “주변 사람들까지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간첩 수사는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 정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됐다. 국가보안법은 독재시대의 무기였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가보안법이 언제라도 국가권력에 의해 남용될 수 있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인권을 망가뜨릴 수 있다며 폐지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폐지되지 않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이 간첩 수사를 꺼내든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반노조’ 기조를 강하게 내세웠고,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존립에 대한 위험’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내세워 무리한 수사를 벌이고, 간첩이 활보하고 있으니 국정원이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공안통치’라는 비판이 나왔다.

12·3 불법 계엄은 명분 자체가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한다”는 것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사건 최후진술에서 ‘간첩’을 무려 25번 언급했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을 비롯한 외부 주권 침탈 세력과 우리 사회 내부 반국가 세력이 연계해 국가안보와 계속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간첩들이 가짜뉴스, 여론조작, 선전·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양씨는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으면 반공주의 공안통치가 또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이 시대 최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무죄 판결에 국가는 책임을 질까. 국정원은 지난 10월 1일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수사를 담당한 일원으로서 대법원 판결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무죄가 확정된 당사자에게 유감과 위로의 뜻을 전달했으며, 내부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씨는 국정원이 입장 표명에서도 자신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빠졌고, 정권이 바뀌었으니 앞으로 환골탈태하겠다는 태도는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입장 표명도 신씨가 대법원의 무죄 확정 당일(9월 25일)과 10월 1일 국정원에 찾아가 강하게 항의한 뒤 나온 것이다. 마침 그 전날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죄가) 되지도 않는 것을 기소하거나, 무죄가 나와도 책임을 면하려고 항소·상고해서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1·2심 무죄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신씨는 “철저히 계획된 공안사건으로 한 사람이 희생양이 되든 말든 국정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도구로 썼다는 생각에 치가 떨린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제가 정치인입니까?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사과를 받게. 친구끼리 싸워도 ‘내가 미안해’ 그러면 ‘뭐가 미안해?’가 당연히 나오는 것이고, ‘이렇게 이렇게 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라고 해야 서로 화해가 되는 거잖아요. 정확히 사과를 받고 싶어요. 국가가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국가의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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