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산소호흡기 때문에 전기세 밀렸는데” 전기·물 끊겨도 90%는 수급자 안돼

2025-10-16

7살 이영원(가명)양은 2년 전쯤 뮤코다당증3형이라는 유전성 희귀 대사 질환 진단을 받았다. 뇌병변·뇌전증·만성폐질환 등으로 중복장애 판정도 받았다. 병증으로 기도가 좁아지면서 호흡기 감염이 잦아지고, 언제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산소호흡기 등의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생활한다.

그런데 생명유지장치 역시 언제 작동을 멈출지 모른다. 장치를 사용하느라 ‘전기세 폭탄’을 맞았는데, 생활고로 관리비를 몇 달 치 연체했기 때문이다. 이양을 포함한 4남매를 혼자 부양하는 어머니 A씨(35)의 속은 타들어 간다. 총 14개 진료과를 돌아다니며 드는 치료비, 그리고 한 달에 최소 100만원씩 드는 재활운동비를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이젠 전기마저 끊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면 전기·수도세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영원이네 가족은 대상이 아니다. 석 달 연속 관리비를 내지 못한 단전·단수 위험 가구인 데다 장애인 구성원도 있지만, 소득 기준이 걸림돌이다. 한 번에 목돈의 소득이 발생한단 것이 이유였다. 공연 업계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A씨는 연말에 행사를 마치면 발생하는 2000만원대의 소득을 쪼개 쓰며 1년을 버틴다. 장애의 중증도도, 한부모 다자녀 가정이란 점도 참작되지 않았다. 주민센터를 몇번이나 찾아갔지만 “도와드릴 수 없다”는 답만 되돌아왔다.

A씨 가족처럼 물과 전기마저 끊어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 10명 중 9명 정도는 기초생활수급자 등으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이 한국사회보장정보원(정보원)을 통해 파악한 올해 전국 단전 위험인구 수는 1만7193명, 단수 위험인구는 1만4639명인데 이중 수급자로 선정된 인구는 각각 13.68%와 11.89%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정보원에선 위기 가구 사각지대 발굴을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47종의 위기정보를 입수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단전·단수 위험은 특히 심각한 위기정보로 꼽힌다. 정보원은 석 달 연속 수도·전기세를 미지급하고 금융연체 등 다른 위기정보도 보유하고 있는 가구여야만 단전·단수 위험 가구로 집계한다. 단순 관리비 체납과 생활고로 인한 체납을 구분하기 위함으로, 정보원의 단전·단수 통계에 포함됐다는 것은 생계의 어려움이 상당 부분 입증됐단 의미다.

하지만 정보원이 파악한 위기정보는 지자체의 ‘참고자료’로만 쓰이고 있다. 정보원은 한 가구당 3개 이상의 위기정보가 파악되면 지자체에 정보를 넘기고, 시·군·구 복지 담당 공무원 취약계층인지를 판단한다. 정보원 관계자는 “위기 당사자의 상황에 맞게 복지서비스 신청을 안내하지만, 숫자로 기록되는 소득이나 재산만 따지고 실질적인 생활의 어려움은 고려되지 않다 보니 신청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실질적인 위기 가구 지원이 이뤄지려면 공적 영역이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양의무자 제도가 폐지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소득 기준에 매몰돼 보수적으로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 공무원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했다.

황순찬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또한 “지자체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위기 가구의 상황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미화 의원은 “취약계층에 맞춤형 긴급복지를 연계하고 직권 신청을 활성화하는 등 위기상황에서 즉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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