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관세협상 타결, 후폭풍 대처에 만전 기하길

2025-10-30

한국과 미국 간 관세협상이 29일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갈 길이 멀다. 3500억달러의 대미투자펀드 가운데 현금 비중은 2000억달러로 결정됐다. 미 조선산업에 투자하는 나머지 1500억달러는 현금과 선박금융(RG), 보증 등을 섞어 구성하는 게 골자다. 현금 투자의 연간 최대한도를 200억달러로 설정해 최소 10년 이상 분납할 시간은 벌었지만 안심할 때가 아니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없이 조달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정부는 외환 자산의 운용수익으로 연간 200억달러를 충당할 수 있다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20억달러(약 601조원)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금(47억9000만달러)을 제외하고 운용 가능한 국채·회사채 등 유가증권은 3784억200만 달러다. 이론상 연 5.3% 수익을 내면 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가용 가능한 외환 운용수익을 몽땅 미국에 투자하면 외환보유액 관리가 힘들어질 게 뻔하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명목상 세계 10위권이지만, IMF 권고 적정선인 4700억달러에 못 미친다. 전체 외환보유액 가운데 유가증권이 89.7%를 차지하는 반면 즉시 유동화가 가능한 예치금은 185억달러(4.4%)에 불과하다. 유가증권 대부분이 미국 국채 등 장기자산에 묶여 급격한 환율 변동이나 외환 유출 시 대응 가능한 ‘실탄’이 부족한 게 아닌지 불안하다. 미국 요구대로 펀드 발생 수익을 원리금 회수 전까지 한·미가 5대5로 나누기로 한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20년 내 원리금 전액을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지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의 명확한 인하 시점과 소급적용 여부가 정해지지 않은 것도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반도체 품목 관세에 대한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게 적용한다는 정부 발표 하루 만에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반도체 관세는 한·미 합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부 조율 과정에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외환 시장의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이나 외환보유액 확충과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여야는 초당적으로 협력해 대미 투자의 법적 근거를 담을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철강 등 일부 품목의 추가 협상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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