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더워서 시험 망쳤어"…핑계가 아니었네

2025-07-11

7월 상순 서울의 한낮 기온이 37.8도를 찍었다. 폭염이 올해 더 일찍 찾아오긴 했으나 더 이상 이례적인 현상은 아니다. 최고 기온 33도를 넘는 날이 10년 전에 비해 60%나 늘었다. 지구 온난화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피부로 체감되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이에 환경경제학자인 박지성 와튼스쿨 교수는 신간 ‘1도의 가격’을 통해 답한다. 이 책에서 그는 단 1도의 기온 상승만으로 국가의 부, 소득, 생산성, 교육, 건강, 심지어 범죄율까지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를 데이터와 통계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기온 상승이 가져오는 변화는 이미 국가와 기업, 개인의 삶을 바꾸고 있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의 인도 제조 업체 사례를 인용해 공장 실내 온도가 1도 높아질 때마다 생산성이 2~4%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연평균 기온이 1도 높을수록 국가의 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8% 낮아진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물론 싱가포르나 카타르처럼 예외적인 사례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더운 나라일수록 소득이 낮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피해는 가난한 국가일수록 더 크게 받는 글로벌 불평등 구조가 드러난다.

박 교수는 특히 기후변화가 공장이나 기계 같은 ‘물적 자본’보다 인간의 건강과 교육, 심리 상태, 직업적 역량 등 ‘인적 자본’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치는데 주목한다. 제조업, 건설업, 광산업 등 블루칼라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운 기온에서 높은 사망률을 기록한다. 평균 기온이 29도를 넘으면 강력 범죄 발생 확률이 9% 높아지고, 폭염이 하루만 늘어나도 업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가 하면, 더운 환경에서 학습하는 학생들의 성취도도 낮아진다. 온열 질환 환자와 같이 더위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과 같이 눈에 덜 띄는 영역까지 기후 변화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자가 제시하는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기후변화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유연한 접근 방식이다. 저자는 ‘인류는 머지않아 종말을 맞게 된다’는 극단적인 경고와 ‘온난화는 별일 아니다’는 무책임한 낙관론 모두를 경계한다. 기후변화에 대해 절망하지도 무시하지도 말라는 것이 그의 메시지다. 이미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가까이 상승했고 2100년 말까지 상승 추세를 되돌려 기온을 낮출 수는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박 교수는 ‘느린 연소(slow burn)’라는 개념으로 이 상황을 설명한다. 지구의 종말이 임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기후변화는 광범위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인류의 삶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 ‘느리게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럼에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기후 문제를 흑백 논리로 보지 않고 회색의 현실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해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대응’, 다른 하나는 이미 불가피해진 온난화의 흐름 속에서 인류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적응’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동·식물 같은 생태계 구성원 등 더 큰 타격을 받는 이들에 대한 공정하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무딘 쇠톱을 휘두르는 대신 외과용 메스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노동경제학과 환경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기후변화의 경제적 영향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왔다. 빌앤멀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은행 등 국제 기관에 조언을 제공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이 책에 방대한 사례와 과학적 데이터, 그러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사례 등을 풍부하게 담았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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