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진 지구, 1도의 가격은 얼마일까...범죄율·학업성적·GDP에도 영향[BOOK]

2025-07-11

1도의 가격

박지성 지음

강유리 옮김

윌북

7월 초부터 폭염의 기세가 무섭다. 서울은 37.1도를 기록해 117년 만에 7월 상순 기록을 경신했고,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40도 넘는 기온이 관측됐다. 여름철마다 기록적인 폭염을 경험하면서 “올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기후학자들의 섬뜩한 경고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럴 때 일수록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 지구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종말론적 서사는 대중들의 공포를 자극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기후재앙 프레임 때문에 기후변화의 실제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자극적인 경고보다는 건조한 통계와 차가운 숫자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기후변화의 비용을 분석한 이유다.

“기후변화는 느린 연소” 보이지 않는 비용에 주목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환경경제학자인 저자는 기후변화를 이 책의 원제인 ‘느린 연소(slow burn)’에 비유했다. 점진적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기에 간과하기 쉽지만, 그 영향은 점점 더 누적된다. 예컨대 산불이 발생하면 우리는 소실된 마을과 피해 규모에 주목하지만, 정작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있는 수백만 명이 유해한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넘기곤 한다.

이를 방치할 경우 사회에 미치는 피해 규모는 걷잡을 수 없게 커질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대규모 산불 같은 자연재해의 피해액은 숫자로 보여지지만, 여기서 파생된 미묘한 피해와 우리가 위협이라고 느끼지 않는 미세한 변화가 일상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덜 극단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기상 현상의 한계 효과는 기후변화의 퍼즐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특히 수많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폭염의 보이지 않는 위협에 주목했다. 미국의 1980년부터 2009년까지 기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온이 높을수록 범죄가 많아졌다. 32.2도 이상의 기온이 일주일간 지속된 경우, 월 강간범죄율은 5% 이상 증가했으며, 살인과 가정 폭력은 3%가량 늘었다. 그는 “기온 상승이 강력범죄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증거는 점점 늘고 있다”며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우려스럽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더 많이 빚어질 폭력적 갈등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도 높으면 GDP 8% 낮아”

기온과 국부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부분도 눈에 띈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이 인도 제조업체들의 노동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공장 실내 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생산성이 2∼4% 떨어졌다. 저자가 이를 토대로 국가별 연평균 기온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함수를 계산한 결과, 연평균 기온이 1도 높으면 1인당 GDP가 8% 낮다는 결론을 얻었다. 책의 우리말 제목처럼 ‘1도의 가격’을 산출한 것이다.

기후위기가 집이나 자동차와 같은 ‘물적 자본’보다 개인의 정신건강이나 교육적 성취, 직업적 역량 같이 보이지 않는 ‘인적 자본’에 더 큰 피해를 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자연재해의 증가로 학교 교육이 어려워지면 학생 개개인의 기대수입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자연재해의 숨은 비용을 분석한 저자는 1인당 500달러(약 68만 원) 이상의 물적 자본 피해를 유발한 대규모 자연재해의 경우, 그 세 배에 달하는 1인당 1520달러(약 209만 원)의 인적 자본 피해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세계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탄소 감축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다양한 위험 앞에 탄력성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기후 적응 대책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저자는 이처럼 다른 렌즈를 통해 독자들이 기후 문제를 바라보도록 한다. 그의 말대로 기후변화를 공포처럼 다루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다들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도 괜찮은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결국 이 책은 기후 우울에 빠져있는 종말론자, 막연한 낙관론을 가진 회의론자 모두가 읽어야 할 이야기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