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현지 시간) 뉴욕시장, 뉴저지·버지니아 주지사 등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미국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자 관련 관세를 대거 취소할 채비에 나섰다. 지난달 30일 부산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년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까지 대두 수출과 희토류 수입 1년 유예 조치를 얻으며 성난 민심을 한 차례 다독였지만, 이번엔 관세 전쟁에 따른 서민 물가가 말썽을 일으키며 정책 방향을 크게 수정하고 나선 것이다. 연방 하원 435석 전체, 상원 100석 중 34석, 주지사 50석 중 36석이 걸린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크게 패배할 경우 자칫 조기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긴장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분위기다. 식품 물가부터 잡기 위해 중남미산 농산물에 부과하던 관세를 대거 없애거나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간 얻은 관세 수입으로 2000달러(약 293만 원)에 달하는 전국민 지원금까지 뿌릴 태세다. 여기에 제약사를 압박해 비만 치료제와 처방약 값을 내리고 50년 만기의 초장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정책을 도입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를 유발했던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연장 불발 시 2000만 명 이상의 건강보험료가 올라가게 되자 이를 대체할 ‘트럼프케어’까지 구상한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다만 이들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정책이 모두 현실화될 경우 38조 달러(약 5경 5586조 원)를 넘어선 연방 재정적자가 한층 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어 금융시장에는 장기적으로 부담을 줄 가능성이 생긴다.
트럼프, 서민 물가 들썩이자 소고기·커피·바나나 관세 결국 면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소고기, 커피, 토마토,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비롯한 열대과일, 견과류, 향신료 등의 농산물에 대한 상호관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돌연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13일 0시 1분 이후 수입된 제품부터 적용됐다.
주요 외신들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앞서 백악관은 13일에도 홈페이지에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와 ‘상호 무역협정 프레임워크(틀)’와 관련한 공동성명을 각각 발표하면서 이들 국가의 기계류, 보건·의료제품, 정보통신기술(ICT) 제품, 화학물질, 자동차, 특정 농산물, 섬유·의류 등에 대한 관세를 낮추거나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에콰도르는 커피, 코코아, 바나나의 주요 수출국이고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소고기 생산국이다.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는 섬유·의류를 주로 만든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13일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커피, 코코아, 바나나 등의 가격이 중요하다”며 “미국에서 그런 것들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관세 비용의 일부라도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면 이제 소매업자들이 그런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고 “아르헨티나산 소고기의 자연스러운 수입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13일 뉴욕타임스(NYT)는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관세 면제 대상이 상호관세 적용 국가는 물론 아직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까지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알렸다. 감귤류 등 식료품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이지만, 소고기 수입의 경우는 미국 축산 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NYT는 “식료품 관세 면제를 실제로 시행하면 미국 국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이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14일 CNBC와 인터뷰에서 “일부 식품과 관련한 관세 면제를 발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역시 12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커피, 바나나 등 미국에서 재배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중대한 발표가 며칠간 있을 것”이라며 “가격이 매우 빨리 낮아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가뭄에 1950년대 이후 소 사육 최저…커피값도 19% 급등

미국에서 식료품 가격이 급등한 데에는 관세를 비롯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정권에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소고기 값의 경우 2022년부터 시작된 장기 가뭄으로 인한 소 사육 두수 급감이 직접적인 폭등 원인이 됐다. 가뭄에 따라 목초지가 황폐화되고 사료값이 크게 오르면서 농장주들이 도축을 앞당기거나 사육을 줄이면서 미국 내 사육 소의 개체 수는 1950년대 이후 70여 년 만에 최소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소 사육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이 그간 빠르게 오른 점도 악영향을 줬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산에도 관세를 더하면서 미국인들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소고기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소고기를 사먹기 힘들어지자 닭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대체품에 대한 수요만 증가했다. 미국 축산업 전문지 비프매거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소고기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박스 포장 소고기 가격은 13% 뛰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7일 “육가공 업체들이 불법 담합, 가격 고정, 시세 조작으로 소고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법무부에 즉각적인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에서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물가는 소고기 값뿐만이 아니다. 커피 가격도 9월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가량이나 급등했다. 16일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는 지난 8월 발표된 맥도날드의 2분기 실적 자료를 기반으로 저소득층의 매장 방문이 두 자릿수 비율의 감소세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경제조사단체 콘퍼런스보드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10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94.6)는 관세에 대한 우려로 8월부터 3개월 연속 하락하며 상호관세가 발표된 지난 4월(85.7)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향적인 조치에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미국에 농산물을 수출하는 국가들은 반색했다. 페니 웡 호주 외교부 장관은 13일 “관세 철폐를 환영한다”며 “이는 호주산 쇠고기 생산업자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반겼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호주는 매년 15만∼40만 톤의 소고기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44억 호주달러(약 4조 2000억 원)어치의 소고기를 수출한 최대 대미 수출국이다.
토드 매클레이 뉴질랜드 통상부 장관도 성명을 내고 “몇 개월간 불확실성과 높은 비용에 직면한 수출업체들이 환영할 것”이라며 “다른 수출품에 대한 상호관세 철폐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자히 사하이 인도수출기업연합회(FIEO) 사무총장 또한 로이터통신에 “연간 25억∼30억 달러(약 3조 7000억∼4조 4000억 원) 규모의 대미 수출이 상호관세 면제 혜택을 볼 것”이라고 기대했다.
15일 AP통신에 따르면 제라우두 아우키밍 브라질 부통령은 이날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관세를 10%포인트 덜 적용받게 됐지만 브라질의 경우 관세율이 50%였기 때문에 세율이 40%로 여전히 높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브라질의 경우는 상호관세는 10%에 불과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친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 재판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을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며 4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탓에 총 50%의 관세 부담을 안고 있다. 같은 50% 관세라도 상호관세가 25%이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 따른 ‘괘씸죄’ 관세가 25%인 인도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50년 주담대’에 약값 인하, 2000달러 배당금 지급…‘포퓰리즘 정책’ 봇물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방향을 튼 경제 정책은 관세뿐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50년 모기지’라는 글을 올렸다. 이는 백악관 참모들과도 전혀 상의하지 않은 정책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빌 펄티 연방주택금융청장이 낸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펄티 청장은 미국의 대형 주택 건설업체인 펄티그룹의 창립자 윌리엄 펄티의 손자다. 올 8월에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인 리사 쿡 이사를 모기지 사기 혐의로 법무부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백악관 참모들은 모기지 기간이 길어지면 장기적으로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50년 모기지는 매달 내는 돈이 조금 줄어든다는 뜻”이라며 “기간이 길어질 뿐이지 큰 변화는 아니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트루스소셜에 또 다른 글을 올리고 “관세 수입을 활용해 고소득층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최소 2000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자 자신의 지지율을 올릴 포퓰리즘 정책을 꺼낸 셈이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를 두고 13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미국인 1인당 2000달러의 관세 배당을 주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관세 수입은 충분하다”면서도 “입법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12일 언론 브리핑에서 “백악관은 2000달러 배당급 지급을 실현하는 데 전념하고 있고 이를 위한 모든 법적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에너지 비용과 약값 등이 내리면서 전임 정부보다 물가가 나아졌고 50년 만기 모기지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취재진들에게 “1인당 2000달러 배당금 지급 시기가 올해 크리스마스 이전은 아닐 것”이라며 “내년에 지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지난 6일에는 백악관에서 ‘젭바운드’ 제약사인 일라이 일리, ‘위고비’ 제약사인 노보 노디스크가 미국 내 비만치료제 가격을 내리기로 합의했다고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고비 가격은 월 1350달러에서 250달러로, 젭바운드는 1080달러에서 346달러로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약값 인하로 미국 매출에서 손실을 보는 대신 3년간 관세 면제 혜택을 얻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처방약 가격을 내리기 위해 제약사들과 추가 협상에도 나섰다.
중간선거 겨냥 ‘트럼프케어’까지 나올 수도…크루그먼 “재정 건전성 걷잡을 수 없이 악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관세 정책까지 양보하면서 기존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4일 지방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한 이후 행정부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가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왔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에서도 극단적인 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던 배경에도 높은 생활비, 주거비에 대한 유권자들의 뿌리 깊은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지난해 대선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이 고물가의 주범이라는 식의 공세를 펴 재집권에 성공한 바 있다. WSJ은 그러면서 “유권자들은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물가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들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오바마케어를 대체할 새 건강보험 체계를 추진할 뜻까지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몇몇 민주당 인사들과 개인적인 대화를 했다”며 “큰 액수를 국민들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오바마케어 보조금 연장 여부는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최장 기간인 43일간 이어진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의 최대 갈등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대로 오바마케어에 대한 보조금이 그대로 종료되면 2000만 명 이상의 미국민들이 더 많은 건강보험료을 부담해야 한다.
전문가들과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용 정책 구상 대다수가 재정 적자를 악화시키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연방 재정적자는 감세 법안 등의 여파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더 빠르게 증가하며 지난달 38조 달러를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 승리한 직후인 지난해 11월 말까지만 해도 36조 달러(약 5경 2661조 원)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도 안 돼 2조 달러(약 2926조 원) 이상이 불어난 셈이다.
더욱이 각종 생활 물가가 뛰는 상황에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셧다운 사태 영향으로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공무원들이 43일간 이어진 역대 최장 셧다운 사태 내내 무급으로 휴직했던 까닭에 지난달에는 자료 수집을 위한 대면 조사를 수행하지 못했던 탓이다. 관세 해제 품목이 농산물에 집중되면서 미국산을 주로 수입하는 입장인 한국이 혜택을 입을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경제지리학을 결합한 새 무역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10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1인당 2000달러 배당 지급안을 두고 “끔찍한 발상이자 재정적으로 완전히 무책임한 조치”라며 “세입이 줄고 적자가 불어나는데 관세 수입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킬 위험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중간선거가 가까워 오고 트럼프 대통령이 불리한 처지에 놓일수록 미국 행정부가 억지로 물가를 내리고 세금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행위를 계속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한국 등이 우려하는 무리한 품목 관세 부과 속도도 다소 조절될 수도 있다. 아직 관세 효과가 소비자 물가에 완전히 전이되지 않은 상황이라 트럼프 행정부가 마주할 부담이 적어도 줄어들 공산은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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