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멈춘 가자] "하루빨리 풀려나길"…인질석방 염원에 불안한 안도감
공항 키오스크·거리 입간판에도 인질 얼굴…노란 뱃지달고 석방기원
"발효돼도 오래가지 않을 수도"…'전쟁 일상'에 합의에 무덤덤 반응도
(텔아비브=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안전하다고 느끼냐고요? 글쎄요…. 휴전은 아직 발효되지 않았고, 시작돼도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중심도시 텔아비브의 번화가 보그라쇼브에서 만난 슐리씨는 가슴에 인질 석방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 뱃지를 단 채로 "인질들이 하루 빨리 풀려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연합뉴스는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에 전격 합의한 지 하루만인 이날 오후 이스라엘을 직접 찾았다.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국제공항과 텔아비브 시내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오랜 전쟁에 지친 탓인지 휴전 합의에 마냥 환호하거나 반기는 분위기는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입국자 스스로 여권을 스캔하고 얼굴 사진을 촬영하는 키오스크 화면에는 가자지구에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들의 얼굴이 번쩍였다.
검색대로 향하는 복도 양쪽으로는 인질을 한명씩 소개하는 입간판이 늘어서 있었다. 일부에는 태극기와 이스라엘 국기 곁에 "한국이 이스라엘과 함께한다"(Korea stands with Israel)"고 쓰였다.
시내에는 늦은 시간까지 산책을 하거나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Bring them home)는 인질 협상 촉구가 내걸린 건물 외벽이 종종 눈에 띄었다.
길가에서 남편과 담소를 나누던 쥘 코헨(가명)씨는 "우리에게는 아이언돔(이스라엘군 방공시스템)이 있지 않나, 이전에도 지금도 위험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휴전에 대한 생각을 질문받자 "가자지구도, 레바논도 상황이 너무 복잡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금방 다시 전투가 벌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공항은 물론 식당이나 호텔 등 건물 입구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방공호'(shelter) 위치를 알리는 큼지막한 안내판이 걸려 있다. 이스라엘이 수십년간 잦은 전쟁을 겪은 나라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모습이다.
전쟁에 대한 생각은 각양각색이었다.
1992년 러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택시기사 쉴로미 카츠씨는 "예루살렘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3대 종교가 공유하는 성지"라며 이스라엘이 싸움을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이 들렸다.
한 식당 야외석에서 어깨에 소총을 맨 채로 여자친구 슐리씨와 늦은 저녁식사를 하던 자경단원 일란씨는 "유대인을 모두 죽여 없애는것이 하마스의 목표이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 어떤가, 북한이 안보 위협 아닌가"라며 "우리는 그런 적들과 실제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슐리씨는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던 민간인들이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가야만 했다는 사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 훈련 교관으로 군에서 복무했다는 그는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매일같이 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붙이고 다녔다"며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남자든 여자든, 유대인이든 아니든 군대에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42일간 휴전하는 방안에 전격 합의했다. 하마스가 단계적 휴전 성사시 첫 단계에 인질 33명을 풀어주고, 이스라엘은 인질 1명당 팔레스타인 수감자 30∼50명을 석방하는 것이 골자다.
이스라엘은 이날 내각 회의를 열어 휴전안 추인을 시도하려는 방침이었지만, 이날 하마스가 막판에 합의 일부를 파기했다고 주장하며 내각 표결을 연기했다.
다만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휴전 및 인질 석방이 앞서 발표된 대로 오는 19일 이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해 1천200여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납치해 가자지구로 끌고갔다. 이들 중 94명이 아직 억류 중인 것으로 추산되며, 상당수는 이미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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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