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VC'가 한국판 팰런티어를 키웠다면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2025-11-30

미국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많이 언급되는 순간들이 있다. 1939년 스탠퍼드 대학원을 막 졸업한 데이비드 패커드와 윌리엄 휼렛이 지도교수 자택의 작은 차고에서 세운 휴렛팩커드(HP) 창업기가 그중 하나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윌리엄 쇼클리와 ‘8인의 배신자들’이 창업한 페어차일드반도체 그리고 페어차일드의 ‘자식’ 격인 인텔과 AMD, 마우스와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GUI), 이더넷을 낳았음에도 몰락한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PARC), 역시 차고에서 시작했으나 PARC의 마우스와 GUI를 흡수해 PC 혁명을 이끈 애플까지. 1950년대까지 과수원과 통조림 공장만 가득하던 농장 지대는 창업가들의 도전으로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그렇다고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민간 출신 창업가들이 전부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신화 이면에는 냉전 당시 미국 정부의 전략적 개입이 숨어 있다. 미국의 국방·안보 기관이 실리콘밸리 초기 기업 성장을 뒷받침했다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졌다. 미 정부는 군사 분야에서 첨단기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을 발사한 ‘스푸트니크 쇼크’로 우주경쟁이 촉발되면서 실리콘밸리에는 천문학적인 정부 투자가 쏟아졌다. 1960년대 인간을 달에 보내고 소련과의 핵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쳇말로 ‘외계인을 고문한’ 수준의 초월적 기술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정부 연구소의 최신 기술을 기업에 이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이 만든 상품의 대량 구매자 역시 자처했다. 지척의 스탠퍼드·UC버클리와 미 3대 핵 연구소인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는 실리콘밸리의 지적·기술적 인프라를 떠받쳐줬다. 이 과정에서 탄생해 세상을 바꾼 대표적 기술이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개발한 인터넷의 전신 아르파넷(ARPAnet)이다.

냉전 시기에만 이뤄진 일이 아니다.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인터넷 검색을 연구하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창업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이 연구가 DARPA·나사가 지원한 ‘국책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구글은 창업 초기 CIA와 미 국가안보국(NSA)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구글은 태생부터 국가 안보기관의 정보처리 기술을 위해 탄생한 셈이다.

미 정부의 실리콘밸리 육성·지원은 오늘날에도 지속 중이다. 인텔 2나노급(18A) 반도체 공정의 외부 발주사는 미 국방부와 미 정부의 클라우드 제공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AWS)다. ‘민간 우주기업’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나사와 미 정보기관의 지원이 있었기에 탄생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실리콘밸리에는 ‘CIA 벤처캐피털(VC)’인 인큐텔(In-Q-Tel)도 공개적으로 활동한다. 팰런티어와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 구글 어스의 모태가 된 ‘키홀’을 모두 인큐텔이 발굴·육성했다.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국정원 VC’가 공개적으로 국가전략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를 미국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은 민간의 혁신 창업’이라고 반기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차이점은 명확하다. 미 정부는 전략기술에 ‘첫 단추’만 끼워준다. 시장 확대와 혁신은 기업이 가장 잘한다는 점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권이나 의사 결정에는 가급적 간섭하지 않는다. 기업이 자생력을 갖춘 뒤에는 일종의 ‘관치’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기술 주도 국가로 가는 길은 정부의 전략적 개입과 기업의 시장 경쟁력이 균형을 이루는 데서 출발한다. 실리콘밸리가 기술 혁신의 심장부로 수십 년간 위세를 떨쳐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판 팰런티어·스페이스X가 태어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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