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對中 견제조직 ‘막가파’식 해체가 무서운 이유

2025-03-29

美, 연방정부 대폭 축소 개편하며 中 견제조직도 사실상 해체

국방부 ONA, 국토안보부 CSRB, 글로벌미디어국 VOA·RFA 등

급진적 구조조정, 오히려 中 정보전 확장에 유리한 환경 조성

“VOA,누더기처럼 버려졌다” 中,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방정부 조직을 대폭 축소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조직까지 사실상 해체하는 수준을 밟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불과 두 달여 만에 대통령 직속 정부효율부(DOGE) 주도로 진행된 급진적인 구조조정이 중국의 정보전 확장에 오히려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부효율부는 비용절감과 관료주의 혁파를 명분으로 내세워 정부기관 전반에서 대대적인 개편을 진행하는 가운데 그 대상에는 중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조직들이 대거 포함돼 있으며, 심지어 중국이 직접 힘을 빼려고 했던 기관들도 포함돼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 등이 지난 22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스텔스 기능을 갖춘 차세대 전투기 F-47 개발 계획을 공식 발표하는 자리에서 “중국의 태평양 패권 야욕을 견제하겠다”고 밝히며 중국 견제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미 정부의 대외 영향력 확대에 핵심 역할을 해온 주요 기관들이 해체 또는 예산 삭감으로 ‘식물인간’ 상태로 빠뜨렸다고 NYT는 비판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 견제를 목표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미 정부 내 중국이 두려워하는 조직들은 줄줄이 문을 닫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지난 13일 국방부 내 싱크탱크 격인 총괄평가국(ONA)을 없애고 모든 직원을 재배치하라고 명령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1973년 설립된 ONA는 인공지능(AI), 자율 무기(AI 기반 무기) 등 미국이 앞으로 10∼20년 내 직면할 위협과 도전을 예측하는 역할을 해왔다. 대부분 직업 공무원과 현역 군인들로 구성된 ONA는 중국 경제와 대만의 관계, 자율 무기 등장에 따른 전쟁수행 방식 등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연구를 해왔다.

특히 냉전 당시 소련에 대한 장기 전략을 기획했던 이 기관은 ‘냉전을 이긴 사무실’로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조직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ONA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냉전 때 미국의 승리를 도왔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미래전쟁에서 어떻게 이길지에 대한 구상없이 조직을 폐지했다”고 비난했다.

앞서 지난 1월엔 미 국토안보부의 사이버보안 관련 조직인 사이버안전 점검위원회(CSRB)가 폐지됐다.CSRB는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인 2022년 출범한 조직이다. 정부를 비롯해 기업과 중요 인프라 등에 영향을 미치는 사이버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원인을 조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더욱이 CSRB는 중국 정보기관이 미국의 통신 대기업들을 침투한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고 관련 증언을 청취하기 시작한 상황이었지만, 전격 해체됐다. CSRB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미 정치인과 관련있는 사람들의 휴대전화를 해킹하려던 중국 해킹조직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NYT는 CSRB가 중국 정부와 연계된 해킹단체인 ‘솔트타이푼’이 미국의 통신 업체들을 침투한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으며, 이제 막 관련 증언을 청취하기 시작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솔트타이푼은 지난해 수개월 간버라이즌과 AT&T 등 미 통신업체와 루멘 테크놀로지 등 통신네트워크사의 자체 시스템을 이용해 미 정계 인사들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표적은트럼프 대선 캠프 고위 인사, 바이든 행정부 고위 인사, 척 슈머 당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의 보좌진 등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NYT는 “사이버안전 점검위원회는 해체됐다”며 “미 통신회사가 1년 이상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 (침투)에 무방비였던 이유를 알아내는 일을 누가 맡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폴 콜브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중국이 해군력 증강과 위안화 결제망 확대, 외교 공세에 나서는 상황에서 미국은 대외 정보채널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중국 내부에서는 미국의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소프트파워’(Soft Power·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 교육, 학문, 원조 등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를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진 좌파의 목소리’라고 비판해온 미국의 대표적인 대외방송인 ‘미국의 소리’(VOA)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금으로 급진적 선전 방송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보수 성향 정치 운동가인 브렌트 보젤 3세를 VOA 상급 기관인 미 글로벌미디어국(USAGM) 국장에, 카리 레이크 전 애리조나 상원의원 후보를 VOA 특별 고문에 각각 임명해 칼을 휘둘렀다. 현재 1300여명의 전체 직원이 유급휴직 상태이고 계약직 신분의 VOA 소속 기자와 편집자, 영상 제작자, 엔지니어, 기술자 등 550명은 USAGM으로부터 e메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VOA는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敵國)인 일본·독일의 선전에 대응해 방송을 시작, 지금까지 50여개 언어로 전 세계 3억 명 이상의 청취자들에게 방송을 해왔다. 1950년 설립한 자유유럽방송(RFE·Radio Free Europe)은 냉전시기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공산국가들에 '바깥 세상' 소식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1996년 설립한 자유아시아방송(RFA)는 언론이 통제되는 북한·중국·베트남 등의 내부 소식을 현지 언어로 국제사회에 알리고, 미국의 입장과 국제사회 소식을 전하는 기능을 해왔다. 아시아 지역에서 주당 6000만명 이상이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의 신장(新疆)위구르족 강제수용소 문제를 처음 폭로한 바 있다.

RFA는 미 워싱턴 본부 인력 75명만 남기고 대부분을 무급휴직 처리했다. 베이 팡 RFA 대표는 “우리는 독재국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현실을 전하는 몇 안 되는 창구”라며 “이같은 조치는 아시아 민중뿐 아니라 미국에도 큰 손실”이라고 개탄했다.

이밖에도 USAGM 산하에는 공산 정권 치하 쿠바 국민들을 상대로 방송하는 쿠바방송국(OCB)과 이슬람권과 아랍 지역을 위한 방송 중동방송네트워크(MBN)도 있다. 이 방송들 역시 송출 중단 위기에 처했다.

중국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 영문매체 글로벌타임스(GT)는 지난 17일 ‘거짓말 공장으로 알려진 VOA가 운영을 중단한 이유’라는 내용의 사설을 통해 “이른바 자유의 등불인 VOA는 이제 자국 정부에 의해 더러운 누더기처럼 버려졌다”고 반겼다. 그러면서 “1942년에 설립된 VOA는 냉전의 이념적 대립에서 최일선의 선전 도구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러나 그 독립성과 신뢰성은 오랫동안 의문과 비판을 받아왔다”며 “갈등을 유발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며 정권 교체 운동에 가담하는 것으로 유명한 VOA는 평화로운 진화를 위해 철저하게 조작된 미국의 선전 기계로 널리 인정받으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악명을 얻고 있다”고 GT는 주장했다.

GT는 또 “중국 관련 보도에 있어 VOA는 끔찍한 실적을 지니고 있다”며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을 비방하는 것부터 남중국해 분쟁 과장, 대만 독립 세력 지원부터 홍콩 폭도들에 대한 후원, 이른바 중국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원 조작부터 중국의 과잉 생산 주장 조장까지 중국에 대한 거의 모든 악의적 허위 사실에는 VOA의 지문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고 힐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 시절 시작한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을 비판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은 첨단 반도체 생산, 배터리·양자컴퓨터 등 주요 기술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중국은 이미 해당 기술 분야의 자국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은 “중국과 경쟁을 강화한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국력에 도움이 되는 수단을 축소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25년간 일했던 폴 콜베 하버드 케네디스쿨 벨퍼과학국제문제센터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쉬지 않고 사이버 공격을 가하고 미 태평양 함대를 물리칠 해군을 건설하고 ‘늑대 전사’(戰狼) 외교관을 파견하는 동안 미국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미국의 쇠퇴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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