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에 논리로 신산업 설득…‘기업의 책사’ 대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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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서클 제로, 눈밑 지방 재배치 xx만원.”
미용·성형 의료 플랫폼 ‘강남언니’에 올라온 병원 광고 문구다. 마치 음식 배달앱처럼 한눈에 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걸 두고 의료계는 “의료광고”라며 반발했다.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광고하는 건 불법이지만, 사용자가 쓰는 후기까지 광고인지는 모호한 탓이다. 기업 대관팀은 사례와 제효과를 앞세워 정부와 국회를 설득했고, 각종 토론회를 주도하며 ‘정책의 무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는 잇따라 플랫폼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강남언니 운영사 힐링페이퍼의 황조은 대외정책이사는 “회색 지대의 신산업을 ‘제도’로 연결하는 실무가 바로 대관(對官)”이라며 “업(業)의 정당성과 공공의 실익을 설득하는 게 대관의 무기”라고 했다.

◆국감의 ‘보이지 않는 전쟁터’=매년 가을이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복도는 또 다른 전장(戰場)이 된다. 총수를 국감 출석에서 빼내는 건 각 기업 대관팀의 핵심 임무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나마 올해 국감은 이재명 대통령의 ‘총수 소환 자제’ 주문으로 오너 증인 채택이 줄줄이 취소돼 상대적으로 긴장도가 낮았다. 지난해 A대기업은 인적 분할과 합병 등 사업 재편 과정에서 총수가 국감에서 증인으로 채택될 뻔하자 ‘비상’이 걸렸다. 내부에서는 총수가 증인 명단에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 파악한 것부터 실책이라는 말이 나왔다. 국감 뒤, 해당 기업은 지주사 직속 대관 조직을 신설했다.
총수의 국감 출석을 막아보려다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다. 한 유명 플랫폼 기업은 2023년 국감에서 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되자 급히 로펌을 투입해 대응했다. 증인 철회에는 성공했지만 일각에서는 “힘으로 밀어붙였다”며 괘씸죄 대상에 올랐다. 결국 이듬해에는 총수가 직접 증인석에 섰다.
대관의 세계는 철저한 ‘장기전’이다. 학연과 지연이 기본이고, 오랜 라포(rapport·신뢰 관계)를 쌓는 인내가 필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좌진의 ‘수발’을 자처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는 증언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대관팀장은 “회식 자리 때 결제해 달라는 전화에 달려가거나, 보좌진의 사적인 민원을 기업 대관 담당자를 통해 처리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국회의원의 지역구 행사를 후원하거나 특산품 구매, 재해 복구 지원금 전달 역시 ‘관계 관리’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정보전’에서 ‘정면 돌파’로=2014년 12월, ‘국정농단’ 사태의 서막 격인 사건이 터졌다. B기업 사무실에 검찰이 전격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재계는 “갑자기 웬 B기업이냐”며 술렁였다. 알고 보니 차장급 대관 담당 직원이 정윤회씨 관련 청와대 문건을 입수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던 경찰 정보라인을 통해 청와대 내부 문건을 받아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력이 곧 무기’였던 시대, 뛰어난 정보맨은 ‘사선(死線)’을 넘나든다는 걸 실감케 한 사건이었다. 국정농단이 본격화하자 재계 전체가 얼어붙었다. 이 시기쯤 쑥쑥 성장한 스타트업들은 과거처럼 권력의 정보를 좇기보다, 본업에 충실하는 쪽을 택했다. 대관의 핵심을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우리 산업이 왜 필요한가’로 옮긴 셈이다.
정면 돌파가 항상 능사인 건 아니다.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는 출시 직후 회원이 170만명을 넘을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2020년 3월 민주당 주도로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세가 꺾였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법안을 주도한 의원을 향해 “혁신을 발목 잡는다”며 정면승부에 나섰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 앞둔 의원들은 꿈쩍도 않았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회는 눈앞의 택시기사 표를 더 의식했다”며 “혁신의 설득력보다 정치의 현실을 마주한 사례”라고 했다.

◆로펌의 부상, 대관의 재편=2016년 9월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도 대관의 판을 완전히 뒤바꿨다. 식사 한 끼, 술 한 잔에도 법의 칼날이 닿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도 로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규제가 늘고 법률이 복잡해지면서 ‘관계 기반 대관’ 보다 ‘법률 기반 대관’이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이다. 자체 대관팀을 둘 여유가 없는 스타트업들도 규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로펌을 찾는 경우가 급증했다. 센 ‘전관’을 중심으로 한 대관 외주 시장도 여전히 활황이다. 증인 채택 단계를 총수에서 임원급으로 낮추거나 언론 보도 대응을 전담하는 ‘국정감사팀’을 꾸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좌관 출신들도 독립해 행정사 사무소나 리스크 매니지먼트 컨설팅펌을 차리며 시장을 형성했다. “보좌관 출신 전관예우의 유통기한은 3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국회 회기 주기와 함께 인맥의 수명도 짧다. 반면에 로펌은 이런 개인 네트워크를 흡수해 ‘시스템’으로 바꿨다. 법안 발의 단계엔 전직 보좌관, 법사위 심사엔 국회 사무처 출신, 본회의엔 전 국회의원이 투입되는 식이다. 국회가 만든 규제를 로펌이 해석하고, 다시 국회를 설득하는 순환 구조가 완성됐다. 업계에선 “결국 로펌만 배불리는 구조”라는 냉소도 나온다.
대관의 범위는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노무·산재·노조 이슈 관리가 상시화하면서 노동 전문가들이 기업의 리스크 관리 부서로 이동하는 사례가 늘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국회 통과를 앞둔 지난 5월 이상진 전 한국노총 조직확대본부장이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CLS는 쿠팡의 물류 자회사로 배송기사(퀵플렉서)들이 소속돼 있다. 최근 대관팀을 강화한 쿠팡은 여·야당 보좌관 출신들로 십수 명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대관의 무게도 커지고 있다.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보호무역주의 등 복합 이슈가 늘면서다. 외교부 출신인 김원경 DX부문 경영지원실 글로벌공공업무(GPA 사장은 마러라고 골프 회동 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수출 차량의 절반 이상이 미국행인 현대자동차는 2023년 글로벌 대관 조직인 GPO를 만든 뒤, 지난해 사업부급으로 격상했다. 현재 김일범 부사장, 우정엽·연원호 전무, 김동조 상무 등 외교부 출신들이 GPO의 주축으로 뛰고 있다.

◆전관 아닌 ‘정책 설계자’로=최근 대관의 무게중심은 ‘데이터’에 실려있다. 특히 신산업 규제의 ‘그레이존’에 놓인 스타트업들이 그 흐름을 앞당겼다. 대표가 직접 국회 세미나에 참석해 정책의 취지를 설명하거나 업계 협회를 통해 공청회 자료를 내는 식이다.
‘골리앗 중심’이던 대관의 구조도 흔들리고 있다. 당 대표나 중진 의원의 한마디가 아니라, 상임위 의원과 보좌진의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인맥·학연·지연 같은 전통적 네트워크가 작동하긴 하지만 스타트업들이 파고들 여지도 넓어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1조4590억원 규모의 GPU 인프라 공모사업에서 중소 스타트업들이 국회의원실을 직접 찾아가 ‘특정 대기업에 유리한 조건이 제시된 것 아니냐’면서 질의한 사례도 있었다.
기업 내부의 대관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컴플라이언스형 대관’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접촉 내역·식사 내역을 전자결재 시스템에 기록하고 기업별 윤리위원회가 사후 점검하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벤처·스타트업계 멘토로 꼽히는 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는 “신산업이 기존 산업과 충돌할 때 정부·국회·이용자를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대관”이라며 “이제는 로비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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