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품 우려 여전, 부티크 직소싱으로 신뢰도 UP
젠테, 330개 이상 부티크와 계약...7000여개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 공급
코로나19 기간 명품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2022년까지 유동성이 넘쳤지만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자 값비싼 핸드백 등을 구매하는 보복소비가 폭발했다. 명품을 유통하는 플랫폼 업계도 수혜를 입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22년 하반기. 이후 이들 업계는 수익성 개선에 전념했지만 작년부터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고객도 급속히 이탈해 매출 규모도 크게 줄었다.
이런 명품업계에서 조용히 성장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젠테’다. ‘100% 부티크 소싱’으로 가품을 없애자 고객이 몰렸다. 명품 플랫폼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젠테는 23년 매출 488억원과 영업적자 5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매출은 500억을 돌파하며 성장하고 적자폭은 전년 보다 더 줄인 것으로 전망된다.
젠테의 매출은 2020년 18억원에 불과했지만 이듬해 132억원으로 늘었고 2021년 114억원, 2022년 309억원으로 증가했다.
젠테 관계자는 “매출이 연평균 150% 이상 견조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광고와 마케팅이 아닌 고객 경험을 통한 입소문으로 확대, 충성도를 높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반기 흑자를 냈다. 매출은 300억을 넘겼고, 영업이익은 6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47% 증가한 수치로, 2023년 명품 플랫폼 연 매출 1위 등극과 2024년 1분기 창사 이래 첫 흑자 달성에 이은 성과다.
젠테는 코로나 기간인 2020년 4월 설립된 후발주자다. 머스트잇(2011년), 발란(2015년), 트렌비(2017년) 등과 비교하면 설립 시기가 한참 늦다.
명품 플랫폼의 1세대는 필웨이(2002년 설립), 머스트잇, 리본즈(2012년 설립) 등이다. 이들 플랫폼은 개인간거래하는 C2C방식, 중고거래로 시작되거나 오픈마켓 모델이다.
병행수입 셀러(판매자)가 사이트에 올린 제품을 고객들이 구매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같은 제품이라도 셀러별로 차이가 큰 가격 △오래 걸리는 배송 △복잡한 교환·반품 △오배송 가능성 △가품 가능성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플랫폼은 ‘부티크 소싱’ 기능이 더해진 ‘2세대’로 한 단계 진화했다.
부티크 소싱은 1차 도매상인 해외 유명 부티크와 계약하고 현지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중계 판매하는 ‘직매입’ 구조다.
명품 브랜드와의 직접 계약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최상위 총판업체와 손을 잡고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부티크는 브랜드와 직접 계약하고 제품을 유통하는 만큼 가품 가능성이 ‘제로’다.
대표적인 2세대 명품 플랫폼으로는 코로나 기간 크게 성장한 트렌비, 발란, 디코드, 캐치패션 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2세대의 강점은 부티크 소싱”이라며 “명품들은 제품 공급 계약을 맺을 때 상대 회사의 이미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몇 대에 걸쳐 사업을 해온 부티크는 1차 벤더가 될 수 있지만 한국의 온라인 회사는 그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가품 유통 확률을 줄이고 다양한 명품 브랜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부티크와의 계약으로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된다.
다만 부티크 계약도 한계가 있다. 통상 명품 브랜드들이 신뢰하는 유럽의 유명 부티크들은 최소 수십년에서 수백 년간 사업을 영위해온 ‘장수 회사’다.
과거 지역 유지들이 귀족과 상류층을 상대로 옷이나 가죽제품 등을 판매하기 위해 운영한 가게가 부티크의 유래다.
이후 후손들이 이어받아 현재도 사업을 이어나가는 만큼 자부심이 상당하다. 콧대가 높아 계약도 쉽지 않아 국내 명품 플랫폼들은 부티크 소싱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었다.
젠테는 모든 제품을 부티크에서 가져온다. ‘100% 부티크 소싱’이 이들의 슬로건이다. 고객 신뢰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일반 셀러는 받지 않는다.
2세대 회사들이 원했지만 할 수 없었던 사업 모델이 나오면서 명품 플랫폼 시장은 ‘3세대’로 재편되고 있다. 3세대의 핵심 특징은 부티크 소싱으로만 제품을 들여온다는 점이다.
젠테가 부티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정승탄 대표의 노력 덕분이다.
1989년생인 정 대표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사회경제학을 공부했지만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피렌체 가죽학교를 다닌 뒤 불가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이후 정 대표는 디자이너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와 이탈리아 가죽 기업 피스톨레시 SRL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며 10년 넘게 현지 부티크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때 구축한 네트워크는 젠테가 빠르게 부티크와 계약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아울러 정 대표는 부티크와 계약하기 위해 젠테 설립 초기부터 ‘지극정성’으로 부티크 문을 두드렸다.
수백 개의 부티크에 명절마다 편지를 보내고 1년에 몇 번씩 현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신뢰도를 쌓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발생했고 부티크들이 온라인 판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기회를 얻게 됐다.
젠테는 330개 이상의 부티크와 계약을 맺고 유럽 현지의 7000여개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을 고객들에게 직접 공급하고 있다. 설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젠테가 300개 이상의 부티크와 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내부 시스템 투자의 결과다.
젠테는 자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인 ‘젠테 포레’를 구축하고 부티크와의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있다.
젠테 포레는 명품 업계의 틈새를 파고는 시스템으로, 온라인화 비율이 현저히 낮은 현지 부티크와 연동해 실시간으로 재고를 관리하고 즉각적인 소통 툴을 만들어 유통 과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게 특징이다. 젠테 포레 구축으로 중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80%를 절감했다는 게 젠테 측의 설명이다.
2세대까지는 대부분의 명품 플랫폼들이 ‘부티크→해외 에이전시→국내 에이전시→국내 도매업체→국내 소매업체→고객’으로 복잡한 유통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젠테는 ‘부티크→젠테스토어→고객’ 등으로 이 과정을 개선했다.
젠테 관계자는 “입점 브랜드나 부티크는 온라인에서도 제품을 재고 관리 고민 없이 원활히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브랜드 혹은 부티크와의 협력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자체 콘텐츠도 만들었다. 단순 유명 명품 브랜드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플랫폼을 넘어 브랜드의 기원과 디자이너의 이야기, 제품의 특징, 스타일링 방법 등을 고객에게 제공한다.
부티크 확보로 가품 문제를 해결하자 신규 고객이 유입됐다. 고가, 고관여 제품을 다루는 명품 시장에서 플랫폼의 신뢰도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최근 온라인 명품 구매가 증가하면서 플랫폼의 신뢰도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품 판매, 개인정보 유출, 부적절한 AS 등 다양한 문제로부터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젠테는 고객을 늘리기 위해 부가세 포함 가격, 무료 배송, 월 1회 무료 반품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젠테는 2025년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와 명품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실 경영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매출 대비 광고비를 1%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가품 0%’, ‘부티크 100%’ 정책을 통한 신뢰도 구축으로 입소문 마케팅을 실현해 온 전략을 더욱 고도화할 방침이다.
자체 ERP 시스템인 ‘젠테포레’를 통해 유럽 부티크들과 실시간 재고를 연동하고 관리하며 중간 유통 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가 대비 평균 40% 이상의 경쟁력 있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2% 미만의 낮은 품절률로 고객 만족도를 높이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젠테는 2025년의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도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계획이다. 특히 고객 충성도 제고와 운영 효율화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는 이미 시작된 글로벌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 11월 글로벌 플랫폼을 공식 론칭하며 세계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젠테는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은 물론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등 전 세계 10여 개국의 330여개 부티크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중동 및 미주 지역 부티크와의 추가 계약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는 현지 언어 서비스를 진행하며 AI 기반 언어 자동 번역, 지역별 브랜드 페이지 구축, 3D 제품 정보 제공 등 글로벌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기능들을 추가할 예정이다.
에디토리얼 콘텐츠는 올해 더욱 강화해 각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제공하고, 글로벌 패션 저널리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의 역사, 장인정신,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측면을 조명할 계획이다.
젠테는 이미 지난해 다양한 글로벌 플랫폼들과의 협업의 사례로 일본의 바이마와 중국의 포이즌을 통해 해외 시장 진출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양 플랫폼을 통한 각국에서의 실적이 연간 100% 이상 성장했다.
특히 전 세계 각국의 PG사들과 협력을 통해 현지화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글로벌 고객들이 추가 비용 없이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개선했으며 2,3년 내로 중동 및 미주 지역 부티크와의 추가 계약도 추진 중이다.
젠테는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신명품과 컨템포러리 브랜드 발굴에도 더욱 힘쓸 계획이다.
MD와 콘텐츠 마케터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 브랜드본부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으며, 특히 스웨덴 브랜드 ‘아워레가시’는 2021년 국내 소개 후 2년 만에 플랫폼 내 판매량이 20배 성장했으며, ‘미하라 야스히로’, ‘오트리’ 등의 브랜드도 10배 이상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카일리 제너, 헤일리 비버, 블랙핑크 제니와 리사 등 국내외 셀럽들이 선호하는 뉴욕 브랜드 ‘귀조’를 직소싱하는 등 차별화된 브랜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젠테는 각 카테고리 점유율 1위 브랜드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2% 미만일 정도로 다양한 브랜드를 통해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는 롱테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젠테의 라이징 브랜드 큐레이션에 대한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K-브랜드들과 협업, 글로벌 시장에 이들을 소개할 계획이다.
2025년 글로벌 명품 시장은 경제적 불확실성과 소비자 지출 습관의 변화로 인해 도전적인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패션시장은 트렌드가 급변하고 소수 브랜드가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이 아닌 개인화된 트렌드와 무드로 다양한 수요들로 시장을 지배할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2025년까지 명품 시장 소비자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젠테는 이들을 겨냥한 디지털 전략과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를 강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