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칠 교수의 일기는 1993년 〈역사앞에서〉란 제목으로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이 일기는 1945년 11월 29일자 뒤쪽부터 남아있었는데, 그 앞의 일기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유물을 보관하고 있던 필자의 아들 김기목(통계학·전 고려대) 교수가 사라진 줄 알았던 일기를 최근 찾아냈다. 1945년 8월 16일에서 11월 29일(앞쪽)까지 들어 있다. 중앙일보는 이 일기를 매주 토요일 원본 이미지를 곁들여 연재한다. 필자의 다른 아들 김기협(역사학) 박사가 필요한 곳에 간략한 설명을 붙인다.
11월 14일 흐리고 밤에 비 뿌리다. [4시 기상]

종일 〈초당〉 번역.
기봉이의 재롱 날로 늘어간다. 벌써 한 달쯤 전부터 낯선 사람을 가리고 장인이 오셨을 때도 처음엔 가까이 가기만 하면 울더니 차츰 낯을 익히고 나선 아무렇지도 않았다. 저와 좋은 사람을 보면 방싯방싯 웃지만 여늬 사람은 아무리 어루어도 무뚝뚝하니 바라볼 뿐이다.
고운 그림을 보면 좋아하는 건 여러 달 전부터다. 이제는 딸랑딸랑 소리나는 장난감을 좋아하건만 알맞은 것이 없다. 울어도 보질하게 우는 일이 없고 헝헝 하고 엉구럭을 일수 잘 피운다. 얼굴도 일부러 찡그리고 우는 척하는 것이 아주 우습다. 그 어머니가 방에 있다 나가는 걸 알면 반드시 찡얼거린다. 그리고 그걸 용하게 안다. 잘 놀다가도 밖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면 흥흥 하고 보고 싶다는 표시를 한다.

젖을 막 손으로 잡아댕겨다 먹고 젖 먹다가도 치어다보면서 옹알옹알 이야기를 하는 때가 있고 내가 들여다보고 웃으면 저도 젖을 물고 빙그레한다. 밥상을 보면 좋아라고 풀쩍풀쩍 뛰고 그리고 마구 덮치려고 덤빈다. 그릇 모서리를 잡고 끌어댕기면서 제 입도 함께 가져가는 시늉을 한다. 그릇 같은 것 어찌나 꼭 쥐는지 잡은 걸 놓게 하려면 힘든다. 이리해서 밥 먹을 때는 아주 성화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귀를 기울이고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소리나는 방향을 찾는다. 일수 잘 알아맞춘다. 뭣을 볼 때는 어찌나 유심히 보는지 그 매롱매롱한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제 또래 중에 벌써 이 난 아이가 있건만 아직 이는 보이지 않고 벌써 전부터 잇몸을 자꾸 빠는 것이 이가 나려고 수물거려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기분이 좋으면 옹알옹알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라든가 어른의 창가 소리를 따라서 노래하는 시늉을 하는 건 벌써 여러 달 전부터다. 외조부님이 오셨을 때는 쥐엄쥐엄(쪼막쪼막)을 유심히 보고 저도 그 조그만 손을 폈다 오그렸다 해서 모두가 허리를 잡고 웃은 일이 있다. 지금도 가끔 그 고사리 같은 손을 오물오물하는 때가 있다. 방 안이 어두우면 칭얼거리다가도 불을 켜면 좋아서 벙싯벙싯하고 때로는 아주 허허 웃고 불 가까이 가려고 몸을 솟구치고 두 손을 벌려서 불을 잡으려고 한다.

자다가도 오줌을 싸서 잠자리가 칙칙하면 칭얼거리는 소리가 하룻밤에도 몇 번 내 방에까지 들리건만 그 어머니가 곧 손으로 더듬더듬해서 기저귀를 갈아 넣어 준다. 그는 그리하는 걸 귀찮아하긴 새로이 도리어 무척 좋아한다. 모성애의 깊이와 넓이는 우리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가보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새벽에 잘 깨어나고 한동안 재롱을 부리고 놀다가도 다시 잠드는 일이 있다. 아침에 깨어나면 늑지근케도 연신 하품하고 기지개 켜고 그럴 때 두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쭉쭉 쭉쭉 하면 팔다리를 쭉 뻗고 여간 좋아하지 않는다. 무시로라도 그리해 주면 아주 싱글벙글이다. 아내는 벌써부터 교육 책을 공부하고 있다.

그럴 때의 그는 한없이 믿음직하고 탐탁하다. 우리는 기봉이의 기본교육에 대해서 여러 가지 꿈을 그린다. 여늬 아이는 얼굴 씻기를 싫어하고 얼굴을 물손으로 문지르면 마구 우는데 기봉이는 도리어 좋아라고 한다. 눈을 문지를 때만 약간 싫은 듯이 깜빡깜빡한다. 무시에도 자주 끙끙대기도 하지만 우는 일은 그리 없고 고약하게 보채는 일은 통혀 없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들 순하다고 하고 순둥이로 이름이 났다. 그러나 한시도 몸을 가만두는 일이 없고 자꾸 몸을 움직이고 무엇을 장난할까 하고 항시 눈이 반들반들하다. 책상 가까이 와선 책을 나꿔채고 책장을 찢고 종이를 수세미를 만든다. 그래도 우리 양주는 벙글벙글할 뿐이다. 요사이는 하도 잘 끙끙대기에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두 마리 있습니다. 한 마리는 방에 있고 한 마리는 부엌에 있답니다. 방에 있는 강아지는 기봉이라 부르고 부엌에 있는 강아지는 추추라고 이름지었답니다. 두 마리 강아지가 다 잘 끙끙거린답니다.”

하고 가락을 잡으면 저는 아는지 모르는지 벙싯벙싯한다. 벌써 두어 달 전부터 뒤치기를 시작해서 제 혼자 뉘어두면 금시에 훌떡한다. 엎쳐서 한동안 놀다간 힘이 들면 또 끙끙댄다. 그리고 엎쳐서 방향을 일수 잘 틀고 180도쯤 돌아가는 것은 항다반(恒茶飯)이다. 그건 배밀이의 결과다. 제 앞에 장난감이 있으면 역시 배밀이로 움쭉움쭉한다. 저번 날 아내는 열흘 안으로 십 센티 이상 전진할 수 있으리라 하고 나는 이 달을 지내야 할 것이라 해서 서로 내기를 맸다. 이 내기는 내가 지면 좋겠다. 이번만은 억지를 써서 이기지도 않으리라.

기봉이는 오늘로 만 7개월이다. 일곱 달 되었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고 어제 내가 책상머리에서 그를 뒤로 안고 앉았다가 그의 훼방으로 공부는 할 수 없고 시조를 흥얼거리노라니 이놈이 고개를 아주 아프리만큼 뒤로 제켜서 우으로 치어다보면서 어느 곳에서 그런 노랫소리가 들리는가 그 새까만 눈이 반짝반짝하다가 나를 알아보곤 금시에 그 조꼬만 입술이 방싯 하고 웃음을 머금던 것이 하도 귀여워서 오늘 새벽 일기책을 펼치고 앉으니 문득 그 웃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이 글을 적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저 방에서 기봉이 끙끙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그 어머니가 깨어서 기저귀를 갈아 채워주는 모양이고 그래도 칭얼거린다 해서 불을 켜다 주었더니 좋아서 노는 모양이다. 간혹 가다 그의 응 응 하고 힘주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엎쳐서 노는가보다.
요즈음 아빠가 조합을 쉬고 집에서 하루를 지내는 날이 많으므로 기봉이는 가끔 그의 가슴에다, 혹은 무릎에다 아주 흠뿍이 오줌을 싸는 일이 많다. 그러면 우리들은, 잘 했다 기봉이 하고 되려 칭찬한다. 진심으로 아빠는 기봉이 오줌이 즐거운 모양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제 자식 귀엽지 않은 이 있으리오만 우리같이 마음놓고 귀여워할 수 있는 어버이들도 조선엔 드물 것이다. 어른이 계시면. 어린아이는 젖 먹을 때 이외엔 그 어머니 곁에 붙어있는 걸 흉으로 알고 또 어른 앞에서는 아무리 귀여워도 볼 한 번 마음대로 맞춰주지 못하고, 물론 그리하여 크는 아이들을 우리는 귀염받으며 큰다 하지만, 그 어머니론 좀 쓸쓸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우리 집에 어른 모시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서 이런 소리 하느냐 하면 아니다. 남이 인사하기를 얼마나 혼잣손에 어려우냐고 한다. 그 말에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또 흔히는 아이 보는 아이를 두어 그 어머니는 마음대로 나다니는 이도 많은데 그런 아이를 우리는 호강으로 큰다 하지만 정말로 호강일까. 내가 살림에 뭉기는 것을 보고 사람마다 아이 보는 아이를 두라 한다. 그 말에도 나는 우물우물해 버리고 웃을 뿐이다. 사실 나는 기봉이를 잠시라도 내 손 밖에 둘 수 없을 것이다. 밤으로 밝은 불을 찾아서 딴 방에서 바느질하려면 벌써 한 솔기도 꿰매기 전에 키등키등한다. 암만 잠이 들어도 옆이 허전한가 보아, 참 잘 알아맞춘다.
[해설: 마지막 두 문단은 부인 이남덕이 적은 것이다. 부부의 문장과 필치가 많이 닮아서 일기 중 부인의 대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더러 있었는데, 이 대목에서 의문이 풀린다.]
11월 15일 개다. [3시 기상]

아침엔 박제훈(朴齊勳) 씨가 와서 돈 둘러달라고 조르고 조만순(趙萬淳) 씨가 와서 신임 면장 추천에 대해서 이야기가 있었다. 모두 지저분한 노릇이다.
이 혼란기에 얼렁얼렁해서 몇만원 잡았노라고 득의만면한 사람들. 민족국가에도 이롭고 저도 득본 것이라면 좋으련만 모두들 브로커 행세로 돈푼이나 먹는 걸 재미붙이고 저한테 구전만 생기면 그 거래가 조국과 동포에 어떠한 영향을 주든지 도불관언(都不關焉)이니 한심스런 노릇이다.
그러는 판에 흥성하거니 색주가(色酒家)의 세상이 닥쳐 왔다. 새벽에 일어나면 흔히 앞집에서는 저녁의 연장(延長)으로 술 먹는 손들이 떠들고 있다. 우리와는 경도(經度)가 다르지 않건만 일부(日附)가 하루씩 틀려 나가는 셈이다.
11월 16일 개다. (금) [5시 기상]

태양임업의 트럭이 서울 간다기 편승하고 갈까 했더니 아침에 떠난다는 것이 낮이 되고 그나마 짐칸에 탔더니 치워서 배길 수 없으므로 원주서 내리었다.
치악산을 처음으로 자동차로 넘어 보았다. 늦은 가을의 소슬한 산협(山峽) 풍경이 색다른 흥취 없지 않으나 트럭에 스치는 바람이 하도 차워서 아무런 경황이 있을 수 없다. 후일 여길 한 번 걸어 넘어가 보고 싶다. 북록(北麓)의 철로공사는 무척 힘들었을 것이고 과연 잘 되었다. 긴 터널의 중간에 연기 뽑아내는 설비가 있는 것도 처음 보았다.
김인환(金寅煥) 씨 댁에서 저녁 대접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