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경선이나 선거운동 기간이 짧아 유권자가 후보나 예비후보의 공약을 제대로 따지기 쉽지 않습니다. 중앙일보는 학계·현장의 전문가와 함께 전문·선임기자 중심으로 공약 검증단을 가동합니다.
대선 예비후보들이 여성 모병제 확대를 잇따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금은 여성이 장교나 부사관으로 입대하는데, 앞으로 병사로 입대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공약의 배경에는 인구 절벽이 부를 병력 감축의 대안으로 여군을 늘려야 한다는 인식이 깔렸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참여한 김문수 예비후보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3일 “인공지능(AI) 유인·무인 복합 기반 첨단 장비 운용, 군사 검찰, 정훈, 행정 등 분야에서 여성 전문 군인을 확대하겠다”며 “여군 비율을 현재 11%에서 북유럽·이스라엘처럼 30%까지 늘리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 측은 “‘전문 군인’엔 전문병사가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홍준표 예비후보는 “모병제를 확대해 남녀 모두가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홍 후보 측은 “전문병사를 여성에게도 개방하겠다”고 설명했다.
전문병사는 본인 의사에 따라 현재 18개월(육군 기준)보다 더 길게 복무하는 제도다. ‘병사 제대→부사관 임용→최대 4년 근무’의 현행 임기제 부사관이 전문병사의 일종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여성이 병사로 지원하는 ‘여성 희망 복무제’를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예비후보는 남녀 완전 모병제를, 김경수 예비후보는 상비 병력을 35만명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줄이고 부족한 병력은 남녀 모병으로 충원하는 징병·모병 혼용제를 제안했다.
병역은 그동안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군 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병사 월급 200만원으로 인상(윤석열 전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다. 병사 처우를 개선해 20대 남성의 표심을 노렸다.
2023년 말 기준 군 상비병력은 47만 7440명(국회예산정책처)이다.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25조에는 정원을 ‘50만명 수준’으로 규정하지만 이미 무너진 상태다.
복무기간 18개월 기준으로 50만명을 유지하려면 연간 26만 명이 새로 입대해야 한다. 5년 전 한 해 신생아 30만명대가 무너졌고, 지난해에는 23만명으로 줄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군에 입대할 수 있는 20세 남자 인구는 2045년에 11만 9000명으로 줄어든다.
국방부는 간부(장교ㆍ부사관)와 군무원을 늘리면서 여군이 다소 증가했지만, 전체 병력의 4%에 불과하다. 예비후보들은 여성이 병사로 입대하면 여군이 많아져 부족한 병력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그런데 김문수 예비후보가 말한 11%, 30%는 잘못된 수치이다. 현재 여군 비율 11%는 간부 여군의 비율이다. 전체 병력 대비 여군의 비율은 4%다. 김 예비후보가 목표로 내건 "선진국처럼 30%로 확대"는 전체 병력 대비 비율을 말한다. 4%를 30%로 늘리겠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그런데 30% 달성이 쉽지 않다. 국방부는 2027년까지 전체 간부 중 여군을 15.3%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여성 모병제’는 여러 번 제안됐지만, “여성 징병제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논란을 의식해 국방부가 본격적으로 검토하지 못했다. 여성 징병제는 ‘젠더 갈등’을 터뜨리는 소재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여성 모병제 확대를 주장하는 예비 후보들은 모두 여성 징병제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여성 모병제 확대 공약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여성이 병사로 입대하느냐다.
김문수·홍준표·이준석 후보는 유인책으로 군 가산점 재도입을 제시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7·9급 공무원 시험 또는 공기업 공채에 지원했을 경우 만점의 5% 이하의 추가점수(군 가산점)를 받았다. 의무복무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1999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평등권 침해를 들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1년 1월 4일 군 가산점은 폐지됐다.
최근 공무원의 인기가 떨어져 군 가산점이 효력을 낼지 의문이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시험 평균 경쟁률이 32년 만에 역대 최저치인 21.8대 1이었다. 올해 24.3대 1로 약간 올랐지만, 공무원이 예전 인기를 되찾았는지 두고 봐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성 모병 확대는 부사관 모집에 악영향을 미친다. 노훈 전 국방연구원(KAIDA) 원장은 “여성을 전문병사로 많이 끌어들이려고 혜택을 늘리면 부사관 지원율이 타격받는다”며 “전문병사(3~4년)와 단기 부사관(4년)의 복무기간은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입대할 환경도 갖춰져 있지 않다.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육군 최전방 GOP(일반 전초) 소초 275곳 중 112곳(40.7%)에 여성 화장실이 없다. 46%는 여성 샤워실이 없다.
성폭력 사실이 적발된 군인·군무원이 2019년 349명에서 2023년 736명으로 느는(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군 성폭력 문제도 여전하다.
2045년에는 상비 병력이 20만명대로 반 토막 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해 여성을 모병하고 간부를 증원하는 것보다 예비군을 정예화하는 게 전력 증강 효과가 크다.
한편 27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후보는 지난 17일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징병제의 장점과 모병제의 장점을 섞어 ‘선택적 모병제’를 운영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단기 징집병(복무 10개월)과 장기 지원병(복무 36개월)을 선택하는 공약을 냈었는데,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여성 모병제 확대'와 결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