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레 나라 빚과 금리만 높일 수도"...추경 염두에둔 '재정 딜레마'

2025-01-05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구하는 등 정치권 '추경' 압박이 연일 거세지고 있다. 굵직한 새로운 정책을 만들 여유가 없는 만큼 조기 추경이 올해 최상목 표 경제정책 1호 카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난감한 표정이다. 경기 상황도 좋지 않지만, 재정 상황도 여의치 않아서다. 100조원 넘는 대규모 적자 부채로 자칫 나라빚만 늘리고, 금리만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야당은 연일 '추경 압박'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3일 최고위원회의서 "재정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재차 추경을 요구했다. 탄핵 정국과 별개로 민생과 경제 회복 키워드를 선점해 외연을 확장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최상목 부총리는 지난 2일 경제정책방향 발표회에서 “추가 경기 보강 방안을 찾겠다”고 말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추가경정예산'은 언급하지 않는 등 정치권과 정부의 온도차가 뚜렷하다.

이처럼 기재부가 추경에 미적지근한 데는 소위 '재정 딜레마' 배경에 있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5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추경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결국 국채 금리가 올라가고, 이는 시중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민생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해 재정을 써야 한다는 입장과, 정부부채가 많아지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입장 중 1분기 상황을 보면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채 공급이 많아지면 채권 가격은 하락(금리는 상승)한다. 통상 신용도가 높은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회사채 등 여타 채권의 금리를 밀어 올린다. 국채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산출되는 시중금리 역시 오를 수밖에 없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정부뿐만 아니라 순차적으로 기업과 가계에도 이자 부담이 는다는 의미다. 초우량물로 꼽히는 국채가 대거 발행되면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인다는 것도 문제다. 자칫 기업들의 자금 조달도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는 내년에 사상 최대인 197조6000억원 규모의 국고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면 39조2000억원 더 많은 규모다. 이 중 약 80조 원은 적자국채다. 적자국채란 예상되는 세입(들어오는 돈)보다 세출(나가는 돈)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어 순수 '빚'이 되는 채권을 말한다. 채무에 상응하는 국가 자산이 없기 때문에 미래 국민이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해 환율안정을 위한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 20조원 발행도 예정되어 있다. 추경까지 더해지면 100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빚'으로 실탄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재부 측은 “국채 말고는 예산을 마련할 뾰족한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최근 외국인 투자자의 국채 매도세도 국채 금리 상승을 부추긴다.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국채를 약 3조원 팔아치웠다. 선행지표인 선물시장에서는 매도세가 더 거셌다. 기재부의 국채시장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작년 12월 국채(선물 3~30년물 기준)를 15조8949억원어치 순매도했다.

국채 금리를 끌어올릴 '악재'는 이 외에도 산재해 있다. 한국의 정치 불안이 장기화하면 외국인 채권 매도세를 추가로 자극할 수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도 예상보다 매파적 메시지를 보내면서 더욱 강해진 달러가치도 우려 요소다. 익명을 요청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외국인이 추세적으로 국채를 매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이르지만, 채권은 주식보다 환율에 더 민감한 만큼 원화가 절하가 지속하면 국채 매력도가 떨어져 국채 금리는 오름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추경에 대해서도 "1~2분기 추경을 시장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지만, 그 규모가 10조원을 넘는 다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추경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재정 우려에는 공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너무 어려운 만큼 빠른 추경이 필요하다"면서도 "당장 큰 규모보다는 감액한 4조원 규모로 1차 추경을 하는 게 정부의 재정계획에도 부담되지 않고 적합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재정 부담도 큰 만큼 예산이 집행되는 걸 지켜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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