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대 대선에서 김문수 후보의 대패는 국민의힘이 자초한 필연적 결과로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부터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새 노선을 걷는 게 옳았다. 집권당으로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에 대해 국민에게 진솔히 사과하고, 비윤계 인사들을 당의 전면에 배치해야 했다. 당에서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낸 뒤 이준석 의원을 비롯한 반이재명 성향의 인사들과 빅텐트를 추진했더라면 어제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아스팔트 보수’에 사로잡혀 국회 탄핵 이후 금쪽같은 시간을 ‘윤석열 탄핵 반대’ 운동에 쏟아부었다. 당의 쇄신과 반성은 뒷전이었고 무모하게 탄핵 기각만 외쳤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관 전원일치의 탄핵 결정이 나온 뒤에야 국민의힘은 부랴부랴 대선 준비를 시작했지만 이미 중도층은 상당수가 등을 돌린 뒤였다. 이번 대선은 자기 혁신을 외면하고 쉬운 길만 걸었던 안일한 보수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
이제 보수는 벼랑 끝에 섰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총선에서 수도권·중도층에서 심각한 약점을 드러냈고 이 약점은 이번 대선에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뼈를 깎는 자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아스팔트 보수’에서 벗어나 수도권과 중도층에 어필할 수 있는 이념·정책적 기반을 새로 정립하고 그에 걸맞은 인적 진용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이준석 후보의 이탈로 구멍 난 2030세대의 지지 기반을 복원할 방안도 시급하다.
나아가 보수 정치권은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왜 잇따라 탄핵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했는지에 대해 근본적 성찰을 해야 한다. 당에 친박이니, 친윤이니 하면서 권력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면 핍박받는 풍토가 문제다. 헌신·포용이란 보수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도록 당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계속 쉬운 길만 찾으면 내년 지방선거에선 당의 존립 근거가 뿌리째 뽑힐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