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5’ 개막을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해리리드 국제공항. 본 전시까지 3일가량 남은 상황임에도 공항에 마련된 CES 배지 수령처는 이미 25m가량의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붐비고 있었다. 각국에서 온 참석자들의 목소리가 다양한 언어로 뒤섞였고 스마트폰을 들고 안내판을 확인하거나 상기된 표정으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눈에 띄였다.
자신을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임원이라고 소개한 로버트 스털링은 “미래의 AI의 모습을 각 기업들이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며 “지난해 CES에 참가했을 때 느꼈던 감동 이상의 것을 얻어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눈 브라이언 다이크 CES 배지수령처 안내자도 “몇 년째 공항 배지수령처에서 안내를 담당하고 있다”며 “지난해보다 올해 사람들이 더 몰리며 열기가 더해진 것 같다”고 들떠했다.
CES 행사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형건물 벽면에는 이미 CES 로고를 담은 포스터가 웅장하게 걸려 있었고 전시가 열리는 센트럴중심 전시관 인근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중국의 TCL 등 각 기업 직원들이 부스 설치에 몰두하고 있었다. 끼니를 간단히 때우며 준비한 영상들과 제품의 기능을 확인하는 직원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전시장 외관에서 만난 디지털헬스기업 관계자인 마크 와트니는 “CES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인 만큼 실수가 없도록 신경쓰고 있다”며 “참가 기업 중 하나긴 하지만 미래에 현실이 될 기술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현장인 만큼 개인적인 설렘을 감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CES 2025 개막을 앞두고 라스베이거스가 들썩이고 있다. 4300여개의 참가기업과 1만 8000여명의 참석자가 몰리면서 지난해 세웠던 역대 최고기록을 경신했을 뿐 아니라 166개 국가가 참여하며 다양성도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무엇보다 AI와 자율주행 등 첨단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국 기업들이 잇달아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행사주관단체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정한 올해의 핵심 키워드는 인공지능이다. 이외에도 모빌리티, 인공지능, 디지털 헬스 등도 주요 주제로 꼽혔다.
기조연설자로 ‘AI 리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선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황 CEO가 기조연설자로 등장하는 건 2017년 이후 8년 만이다. 업계에서는 황 CEO가 AI 컴퓨팅의 미래를 주제로 차세대 AI 반도체 기술 등 산업 전반의 방향성을 진단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차세대 그래픽 카드 공개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에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CEO, 유키 쿠스미 파나소닉홀딩스그룹 CEO, 줄리 스위트 액센추어 회장, 린다 야카리노 엑스 CEO도 기조연설에 나선다.
AI를 중심으로 각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회의 특징이다. LG전자는 AI를 기반으로 운전자와 모빌리티 내부공간을 감지하는 ‘인캐빈 센싱’ 솔루션을 선보인다. 콘티넨털이 공개하는 운전자 동작인식 기술과 미국 웨이모가 구현하는 자율주행 기술 수준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업체인 위슨은 인간 근육과 비슷한 소프트 근육 로봇에 AI를 결합한 플라이어봇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1000개 이상의 한국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앞서 한국기업은 코로나19 이후 502개 수준의 참가에 그쳤지만 3년 만에 2배 이상의 기업이 야심을 드러내고 글로벌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CES 2025 혁신상을 수상한 292개의 기업 중 한국기업은 129개로 46%에 달하며 유레카파크(스타트업관)에 참가하는 1300개 기업 중에서도 가장 많은 625개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SK그룹, LG그룹 등도 각자 전시관을 꾸리고 혁신기술을 선보인다.
한국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듯 중국 기업들도 CES에 대거 참여했다.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KICTA)에 따르면 CES 2025에 참가하는 중국 업체는 1339개로 지난해(1104개)보다 235개 늘었다. 국가별 참가 규모로는 미국(1509개)에 이은 2위다. 트럼피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중국 제제가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업경쟁력을 과시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업체인 하이센스와 TCL은 중국 업체 중 최대규모로 부스를 꾸리고 AI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홈 기술을 공개한다.
이날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방문한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도 CES를 앞두고 흥분된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CES 배지를 목에 건 참석자들이 호텔 체크인을 위해 늘어서 있었고 비즈니스 미팅자리도 호텔 곳곳에서 쉽게 보였다. 리웨이 장 벨라지오호텔 매니저는 “총 객실이 4000석 정도 되는데 거의 CES 기간동안은 거의 만실상태로 보면 된다”며 “지난해보다도 예약률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부스를 마련한 국내 기업 관계자도 “자사 제품을 소개하는데 주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기업들이 생각하고 있는 미래 AI 청사진이 가장 궁금한 지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