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
카라 스위셔 지음
최정민 옮김
글항아리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감탄과 숭배는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처음부터 둘의 이미지는 조금 달랐다.
게이츠는 내향적이고 차가운 이과 천재의 분위기를 풍겼다. 잡스는 쇼맨이자 비전을 가진 독창적 예술가 같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의 공통점이 더 커 보인다. 이들이 지닌 고독한 천재의 이미지는 퍼스널 컴퓨터(PC) 혁명과 잘 어울렸다. 그들이 설계한 세상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의 컴퓨터로 자신만의 과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런 세상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하게 된 그 시점에 말이다. 영국 언론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빌 게이츠 특집 기사에 썼다. “그가 평생 집착했던 PC는 이제 인터넷 단말기가 되고 말았다.”

소셜 미디어 혁명으로 모든 개인은 연결되었다. 개인이 해결할 과제가 사라진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모든 뉴스를 친구를 통해 듣고 같이 분노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을 만들고 지배하는 인물들은 누구인가?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일론 머스크(X) 등을 떠올릴 것이다. 특히 머스크는 올해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제 뉴스에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이 세상과 업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의문을 품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카라 스위셔의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는 이런 의문에 답한다. 이 책은 게이츠, 잡스, 저커버그, 베이조스, 머스크,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제리 양에 대한 책이면서, 30년 넘게 실리콘밸리를 취재해 온 기자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자서전의 가치는 적혀 있는 업적이 아니라 솔직함에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를 잘 알고 있다. 원제는 ‘Burn Book: A Tech Love Story’. ‘번북’이란 다른 친구들의 불리한 소문을 모아 놓은 공책을 말한다. 공식적으로 보도할 수 없는 얘기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암시를 준다. ‘러브 스토리’란 그들을 미워하기만 하는 건 아니고 애정도 가지고 있다는 양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어린 시절부터 저자는 첩보 세계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이에 걸맞게 국제관계를 전공하고 역정보, 프로파간다를 공부했다. 그러나 학교 신문에 관여하고 '워싱턴포스트' 편집자의 눈에 들면서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런 정보를 꼭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저자의 스타일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였다.” 어떤 자본주의인가? “거짓말쟁이들” “소년왕들” “남자의 탈을 쓴 소년들” “기이할 정도로 큰 세살배기들”이 떵떵거리는 자본주의이다. 미성숙, 이것이 책의 요점이다. 이런 관점은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성숙이 성공의 열쇠는 아니고, 단지 행운이 너무 크다 보니 인격의 약점이 잘 드러나게 된 것뿐이 아닐까. 저자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잡스도 성인(聖人)은 아니었다. 물론 어느 모로 봐도 저커버그(“가장 위험한”)나 머스크(“가장 실망스럽고 극악무도한”)와 비교될 수준은 아니다.

읽다 보면 잊고 있던 AOL, 익사이트, 지오시티스, 알타비스타 같은 추억의 이름들을 만나게 된다. 구글이 최종적으로 야후!를 밀어내는 2000년대 중반까지 이쪽이 얼마나 엎치락뒤치락하는 곳이었는지 새삼 떠올렸다. 그 뒤 20년 동안 이 세계는 시간이 멈춘 듯 페이스북과 몇 개의 SNS가 영구 집권하는 곳이 되었다. 아마 그래서 2022년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긍정적으로 보였다. 소셜 미디어 혁명이 만든 세계는 정체되었고 부패한 냄새가 났다.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뒷일은 우리가 목격한 대로다. 권력에 익숙해진 ‘테크 천재’들은 이제 세상을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 한다. 그들 눈에 대중들이 인간으로 보이기는 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