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 구멍 '숭숭' … "MBK式 인수시 심사도 안 해"

2025-04-22

산업보호법서 외국인 지배 사모펀드 규제 빠져

국내 법인 형태로 인수할 경우 사실상 무방비

고려아연 핵심 기술 유출 우려 현실화

5년간 해외 유출 97건 … 추정 피해액 25조

[디지털포스트(PC사랑)=김호정 기자 ] 시민단체와 학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고려아연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따른 국가 핵심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규제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국계 자본이 지배하는 국내 사모펀드가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큼 산업기술 보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핵심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1일 서울 중구에서 '글로벌 기술전쟁 격화, 핵심 기술 유출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M&A를 통한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가 국가핵심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외국인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경우에는 산업부 장관의 승인이나 신고 후 심사 절차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법인 형태로 설립된 경우에는 외국인이 실질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하더라도 산업부의 사전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허점이 존재한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27일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마련하고 올해 1월 개정안을 공포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국가가 지정하는 핵심 기술에 대한 사전 등록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 형사 처벌 상한선 65억원 상향 조정 등 유출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기술 유출의 우회 경로를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산업부는 외국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외국인이 지배하는 국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조항이 최종안에서 누락됐다"며 "전문가들로부터 맹탕 개정안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국가 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다층적인 보호 조치를 마련했는데도 실질적으로 가장 심각한 기술 유출 우회 경로인 외국인 지배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가 누락돼 법 개정의 핵심 취지가 퇴색했다는 설명이다.

산업부 자료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업종별 해외 기술 유출 건수는 총 97건으로, 추정 피해액만 25조원 규모에 이른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방산 등 첨단 분야에서의 기술 유출이 두드러진 것으로 파악됐다. 조 교수는 "기술 유출의 80%는 기업 내부 인력에 의해 발생했으며, 나머지 20%는 외부 경로"라며 "외부 위협에 대한 제도적 방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는 이러한 규제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지목됐다. MBK는 미국 국적 회장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며 외국계 LP의 자금 비중이 압도적인 펀드임에도 국내 법인으로 등록돼 산업기술보호법상 외국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기술이 해외 매각되거나 제3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기술이 유출될 경우에도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조 교수는 "한국은 법인 국적을 설립지 기준으로 해석하고 있기에 국내 설립 법인이라는 외형만 충족하면 외국계 자본의 실질적 영향을 문제 삼고 있지 않다"며 "산업기술보호법 상 외국인의 정의에 '실질 지배력'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사모펀드나 특수목적법인(SPC)를 통한 우회 인수에 대해 별도 조항을 신설하고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에 대한 M&A 시도 시 사전 승인 의무를 강화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최장욱 서울대 화학생물학부 교수는 "국내 여러 기술들이 중국에 역전을 당하는 상황에서 국가 핵심 기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부에 통제방안을 두고 이를 막는 방안은 체계화된 반면 경영권 차원에서 유출은 사각지역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에는 은퇴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고 역량이 좋으신 분들 중에는 자본의 유혹에 넘어가 적발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사람을 통한 유출은 처벌되면 큰일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엄두를 내지 않지만, 경영권 관점에서 회색지대를 타고 넘어오는 것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모펀드에 의한 M&A 규제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기술 보호에 대한 시각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사모펀드가 기술관련 M&A를 참여할 때 보통 공정위에서 개입하는데, 공정위는 기술 유출 측면이 아닌 기업의 독과점을 중점적으로 본다"며 "산업 기술 보호 측면을 심사하려면 산업부에서 별도로 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배권 문제는 금융권 측면에서 들여다 봐야하기 때문에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광기 ESG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세계 경제의 무역환경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로 바뀌고 있다"며 "기업은 핵심 인재를 유지·보존하는 문제, 인력이 나가더라도 기술을 유출되지 못하게 중간 안전장치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고려아연 사태의 경우 직원들 스스로 기술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보이며 대응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기업들이 처한 상황을 직시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디지털포스트(PC사랑)’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디지털포스트(PC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