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파리의 심판’이 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EU가 수출하는 주류에 대해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하면서 프랑스 와인 업계가 패닉에 빠졌다. 이를 두고 세계 5위 와인 생산국인 호주의 국영방송 ABC는 “‘파리의 심판’은 미국과 유럽 와인 생산자 사이의 경쟁을 촉발시켰고, 관세전쟁이 이를 다시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파리의 심판’은 1976년 발생한, 프랑스 사람들에겐 치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건이다. 당시만 해도 세계 와인 산업에서 프랑스는 절대 권위를 가진 지배자였다. 미국이나 호주, 남미 등 신대륙에서도 와인을 생산하고는 있었지만 이들은 세계 시장에선 명함도 못 내미는 ‘듣보잡’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영국 출신의 와인 전문가이자 와인전문점을 운영하던 스티븐 스퍼리어는 재미있는 기획을 했다. 우연히 자신이 맛보았던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맛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닫고 프랑스 와인과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제안한 것이다. 테이스팅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프랑스의 와인 전문가들. 재미있는 이벤트라 기자들에게도 참석을 요청했으나 미국 타임지 외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결과가 뻔한, 어이없고 우스운 대결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참석자들도 프랑스 와인의 우수성을 확인하겠다는 심사였으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와인이 1등을 휩쓸었다. 프랑스인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겼던 이 사건은 세계 와인 업계에서 공고하게 자리 잡았던 헤게모니에 균열을 냈다. 이 소식이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미국을 비롯해 신대륙 와인의 위상이 새롭게 정립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트럼프는 EU가 미국산 버번 위스키에 50%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에 대한 보복으로 EU 주류제품에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로랑 생마르탱 프랑스 대외무역 담당 장관은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프랑스 와인 생산가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4위의 와인 생산국이자 세계 최대의 와인 수입국이다. 미국이 수입하는 와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프랑스 와인이다. 프랑스와인·주류수출연합회(FEVS)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의 와인 및 주류 수출액은 156억 유로였으며 이중 미국에 수출한 금액이 38억 유로다. 프랑스 전체 와인·주류 수출량의 24%에 이른다. 현재 세계 와인 생산량이 많은 상위 5개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미국, 호주 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