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꿩 꿩 장끼 한 마리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날아온다
호미는 콩 두어 알 들어갈 자리를 만든다
꿩이 늙은 여자 굽은 등을 바라본다 콩을 파먹는다
나무막대기 위에서 흰 비닐들이 펄럭거린다
오매 나 못 살것네잉 저 놈의 꿩이 또 와부렀구만잉 콩 다 파묵어부네잉 인쟈 힘아리 없다고 저것도 나를 아주 사람으로 안보네잉 소리를 암만 질러대도 도망치지 않네잉 참말로 너무 허네 염빙하것다 갬옥살이 허더라도 총이 있으면 콱 쏴 불고 싶네잉
꿩은 부리에 검은 콩알을 물고 있다
여자가 밭둑을 지나 검은 햇빛차단막을 끌고 온다
네 번째 심은 콩밭에 그늘이 포개진다
콩과 콩 사이 낡은 구멍이 촘촘하다
◇김명은= 1963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2008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사이프러스의 긴 팔』(천년의시작, 2014). 현재 〈빈터〉 동인으로 활동 중.
<해설> 꿩 때문에, 네 번이나 콩을 거듭 파종하다니! 푸념 같은 넋두리 이해할 만하다. 나라도 총이 있으면 쏴주고 싶다. 기어이 싹이 날 때까지 검은 비닐 막을 씌우고서야 콩 심기는 끝이 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많은 까투리를 두고 장끼일까? 의문이지만, 시인에게 수컷은 심리적 어떤 반감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또한 의문이지만 아무튼 콩, 총, 꿩 이리는 외마디 글자의 그것들이 명료한 탄성의 발음과 함께 콩밭의 풍경을 마치 경험한 듯 생생하게 그려놓은 시인의 안목은 탁월하다. 그냥 그림이 아닌 의미화를 거쳐 상징화에 이르는 이 시는 “콩과 콩 사이 낡은 구멍이 촘촘하다”에서 그 절정이 숨겨져 있음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