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결, 혁신, 번영을 주제로 다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상징은 ‘나비’였다. 나비는 꽃과 꽃을 연결한다. 쉴 새 없이 꽃가루를 옮기며 생태계 번영에 기여한다. 나비는 세계를 새롭게 하기 위한 날갯짓으로 만물의 교차점에 선다. 경주 APEC 현장에서 나비가 지향하는 세 개의 교차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규범과 질서의 교차점이다.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로 기존 규범이 흔들리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이번 APEC을 계기로 관세 협상 합의를 이끌어냈다. APEC 전 타결이 어렵다는 전망에도 극적 합의에 도달했다. 기존 무역·투자 규범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APEC은 경주 선언을 통해 새로운 경제협력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음은 기술과 문화의 교차점이다. 지붕 없는 박물관에서 열린 이번 APEC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의 내일과 인류 공영을 논의했다. 특히 신라 금관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금관이 천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유는 신라의 빼어난 세공기술과 문화적 창조정신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인들은 금관, K뷰티, K푸드를 통해 우리 문화산업의 저변을 새삼 확인했을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기업인들과 치맥 문화를 즐기며 AI 혁신 파트너로서 한국의 역량과 가능성에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APEC을 계기로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잇따르며 한국이 아태 지역의 AI 허브로 도약하는 핵심 동력이 마련됐다. 경주 APEC은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우리가 나아갈 길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끝으로 외교와 경제의 교차점이다. 이번 APEC은 국가 외교의 커다란 장인 동시에 세계를 이끄는 민간 경제인들의 협력 무대였다. APEC CEO 서밋 연설에 나선 젠슨 황은 민관이 힘을 모아 ‘풍부한 AI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중소·중견 기업인들의 의지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APEC과 연계해 KOTRA가 개최한 ‘붐업 코리아 수출상담회’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75개국 1700개 글로벌 바이어가 방한해 4000개 우리 기업을 만났다. 외국인 투자유치 행사 ‘인베스트 코리아 서밋’에서는 글로벌 기업 14개사가 12억1000만 달러 투자 신고를 마쳤다.
이번 APEC은 천년고도 경주가 제시하는 세 개의 교차점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초격차는 다른 누구와 비교 대상이 되길 거부하고 넘볼 수 없는 격을 갖출 때 탄생한다. 대한민국은 경주 APEC으로 초격차를 확보하고 글로벌 선도 국가로 가는 여정의 출발점에 섰다. APEC은 끝났지만 나비의 날갯짓은 계속되고 있다.
강경성 KOTRA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