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나무 기둥에 기댄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옆구리에는 화살이 꽂혀 있고, 두 명의 집행인이 그의 손과 발을 묶고 있다. 남성은 3세기 로마 황제의 친위 대원이었으나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순교한 성 세바스티아노다. 카라바조의 명작 ‘성 세바스티아노’에 담긴 그의 모습은 암전된 연극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처럼 생생하고 역동적이다.
불세출의 화가 카라바조가 남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성 세바스티아노’와 그의 원작 10점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카라바조 전시, ‘빛의 거장 카라바조&바로크의 얼굴들’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카라바조가 생전 남긴 작품은 100여 점에 불과하다. 그의 작품이 단 1점만 등장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에 몰리는 이유다. 이번 전시는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열린다.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 이탈리아관광청 등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원으로 해외 반출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카라바조의 작품이 대거 서울을 찾았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 중 카라바조의 대표작인 ‘성 토마스의 의심’ ‘그리스도의 체포’ ‘이 뽑는 사람’ 등 3점과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등 이탈리아에 가지 않으면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카라바조의 대표작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카라바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3대 천재 화가로 꼽힌다. 정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바로크 예술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빛과 그림자의 강한 명암 대조를 사용한 ‘테네브리즘’을 창시했는데, 과장된 색과 극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그의 화법은 반종교개혁 정신에 직면한 17세기 가톨릭 교회와 대중 모두에게 사랑 받았다. 역동적인 구도와 생생한 표현 방식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전시는 카라바조가 처음 붓을 들었던 롬바르디아 시기와 부와 명예를 얻은 로마와 나폴리 시기, 비극적인 마지막 삶을 보낸 38세까지 카라바조의 생의 여정을 6개 섹션으로 구분해 선보인다.
전시는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으로 시작한다. 손톱이 더러운 곱슬머리의 소년은 과일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마뱀에게 손을 물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소년은 귀에 사랑의 열정을 상징하는 흰 장미를 꽂고 있는데, 카라바조는 도마뱀과 장미 두 가지 소재를 통해 사랑의 쾌락이 고통으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화폭에 담아냈다.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는 카라바조가 도피하던 1603년 로마 마테이 가문의 의뢰로 그린 작품이다. 두 손에 해골을 들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의 고독한 얼굴은 갈색 계열의 색조와 대비를 이루며 빛과 명암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카라바조 화법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마테이 가문의 또 다른 의뢰작인 ‘그리스도의 체포’는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등불을 들고 체포 장면을 바라보는 인물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말쿠스로 보이는데 이 인물은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관람객들은 카라바조의 작품과 함께 그의 자연주의적 회화 개혁을 함께 한 동료 화가들과 17세기 예술문화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든 동시대 거장의 작품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카라바조의 라이벌이자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니발레 카라치와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 구에르치노 등 바로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